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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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세상보기> 샛강 받아들이는 큰강처럼
지금 한국 사회는 커다란 싸움판 같다. 싸움의 종류와 방식도 다양해서 ‘무규칙이종격투기’를 보는 기분이다.

이라크 파병, 과거사, 국보법 개폐, 행정수도 이전, 고교등급제 파문, 사립학교법 개정, 서울 강·남북간의 격차 등 얼추 생각나는 것만 꼽아도 복잡한 전선(戰線)이 그려진다.

복잡한 전선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다원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과거처럼 민주대 반민주처럼 선명한 대립관계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생략된 뒤늦은 성장통으로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보면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으로 치닫는 측면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과 집단간의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여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자비한 경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는 듯하기 때문이다. 또 문제는 싸움을 주도하는 정치 세력들이 개혁 대 반개혁 혹은 진보 대 보수로 전선을 단순화시키려는 데 있다. 이런 싸움 구도에서는 환경이나 교육, 청년실업, 그리고 민생 문제 같은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 행위는 마치 선거 국면처럼 피아(彼我)를 가르는 데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에, 정부의 통치 행위도 정당의 대의 행위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본의와 관계없이 현정부의 개혁이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블랙 홀’이 돼 가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의의 ‘다양성’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여론에 귀 기울이라는 원로의 충고도 소용이 없다.

흑백 논리로 피아와 선악을 가르는 상황에서는 정치적 이해를 떠난 목소리도 정치적 차원에서 색깔이 덧칠해질 위험성이 있다. 최근 국보법 개폐 논란의 와중에서 나온 조계종 법장 총무원장의 “국보법이 과거 인권을 탄압하는데 쓰였다 해도 지금 안 쓰면 되는 게 아니냐”는 발언이나, 김수환 추기경의 “국보법 폐지는 힘든 상황이다. 모든 문제에서 갈라서는 ‘남남분열’이 큰 걱정”이라는 말도 정치권의 흑백논리로 재단하면 얼마든지 반개혁으로 비칠 수 있지 않은가.

고대 중국의 관리 중에 ‘채시관(采詩官)’이 있었다 한다. 그의 직무는 각 지방의 민요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통치자는 그와 같이 수집된 민요를 통해서 백성의 마음을 살피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개선의 자료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어떤가. 다수의 의견보다는 ‘그래 두고 봐라. 결국은 내가 옳을 것이다’ 하는 과도한 자기 확신에만 투철한 인상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것이 과거의 독재와는 다를지라도 계몽의 과잉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도 위험하다.

철저한 당파성에 입각한 처신이 의로운 자의 지혜로운 선택인 시절이 분명 있었다. 과거 유신치하나 5공화국 시절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다. 퇴행적 보수 세력이나 반개혁적 보수 언론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조차도 큰 흐름 속에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결코 우민이 아니다. 통치자는 큰 강물과 같아야 한다. 큰 강이 샛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류가 범람한다.

공자는 노나라 환공의 묘에서 어떤 그릇을 보고 낯빛을 고쳤다 한다. 그 그릇은, 비면 기울어지고 차면 바로 서고 넘치면 뒤집히는 그릇이었다 한다.

윤제학(동화 작가)
2004-09-29 오후 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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