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의 지도자 ‘작은 거인’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덩샤오핑은 생전에 굳이 자서전을 쓰려 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전기를 쓰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훌륭한 전기는 당사자가 생전에 했던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까지 다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전기를 갖지 않는 편이 더 낮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기대는 빗나갔다. 그가 살았을 때만 해도 그의 전기가 수십 편 쓰였고, 심지어는 그의 딸까지도 펴냈다. 사실 전기 작가에게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도 드물었을 것이다. 혁명과 내전, 권력투쟁의 혼돈 속에서 불사신처럼 살아남아 끝내는 절대권력의 권좌에 등극했으니 말이다.
덩샤오핑 탄생을 맞아 출간된 이 책은 미국에서 활동한 중국인 학자 벤저민 양이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의 업적과 과오를 냉정하게 서술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산 혁명, 항일 전쟁, 문화 대혁명, 6 ? 4 톈안먼 사태에 이르기까지 격동하는 중국 현대사의 최전선에서 세계 제 2의 대국을 이끌어 온 덩샤오핑을 진지하게 분석한다. 또한 탁월한 정치력과 특유의 신념으로 그가 중국에 무엇을 남겼으며, 오늘날 중국은 그의 유산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덩샤오핑은 1904년 쓰촨 성 광안 현의 작은 농촌에서 태어나 1920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대전 후 공황에 시달리던 프랑스에서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워 공장 노동자가 된 덩샤오핑은 중국공산청년동맹 프랑스 지부에 가입하고, 훗날 혁명의 동지이자 경쟁자가 되는 ‘저우언라이(周恩來)’, ‘리리싼(李立三)’, ‘차이허썬(蔡和森)’ 등과 함께 공산주의 이론에 빠져든다.
마오쩌둥의 충성스런 지지자였던 덩샤오핑이었지만, 1950년대 말 대약진 운동이 실패해 3천만 명이 굶어죽는 참상을 보고 “노란색이든 흰색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는 유명한 말로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한다. 이때부터 최고 권력자 마오쩌둥의 눈 밖에 난 덩샤오핑은 문화 대혁명 당시 마오의 추종자들에게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로 쏠리는 자)’라고 비판당하며 여러 번 숙청의 위기에 몰렸다. 공식 지위를 박탈당하고 트랙터 공장으로 쫓겨나는가 하면, 1976년 4인방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자택에 연금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군부를 등에 업은 화궈펑(華國鋒) 세력의 도움으로 복귀하였고, 그로부터 당 중앙 부주석, 국무원 제1부총리, 군사위원회 부주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등 모든 지위를 찾고 실질적으로 중국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모두가 덩샤오핑이 마오의 뒤를 이어 국가 주석에 오르리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1997년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거부하고 한 계단 아래에서 실력을 행사했다.
군인 출신 거물이 즐비한 중국 공산당에서 문관 출신 덩샤오핑이 최후의 승자가 된 비결은 바로 철저한 실용주의와 비상한 정치 감각에 있었다. 명목상의 지위가 아닌 실제 권력에 집중한 덩샤오핑은 언제든지 자기 세력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인민해방군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도록 허가한 것은 당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 냉혹한 면모도 보였다. 당시 동유럽 공산 정권이 줄줄이 붕괴되는 상황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결의가 그러한 참극을 불렀던 것이다. 저자는 당시 외국 정부의 몰아치는 비난에도 눈썹 하나 까딱 없이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들은 조만간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덩샤오핑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낸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마오쩌둥이지만 가장 고마워하는 지도자는 덩샤오핑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덩샤오핑이야말로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자존심을 되찾아 준 지도자라고 생각하며, 그의 여러 과오나 독재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고 칭송한다.
오늘의 중국 지도부는 덩샤오핑의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다. 경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흡사 1970년대 한국의 유신 체제를 연상시킬 만큼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는,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에 있어서도 덩샤오핑이 천명한 “단호하게 대처하고 재주껏 이용하라” 라는 외교 지침이 지금껏 중국 정부가 보여 주는 강경 노선의 핵심이다. 저자는 “향후 중국에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그 인물은 내치가 아니라 외교 드라마에서 태어날 것이다.” 라고 예측한다. 현재의 중국은 덩샤오핑이 빚어 낸 모양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중국의 오늘과 내일을 읽기 위해서는 덩샤오핑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업적중에서도 덩샤오핑이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은 것은 바로 그의 철저한 검약 정신이다. 유품을 정리하던 아내와 딸들이 구멍이 뚫리지 않은 옷이 단 한 벌도 없음을 보고 목 놓아 울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전직 대통령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수감되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대목이다.
‘덩샤오핑 평전’
벤저민 양 지음/권기대 옮김
황금가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