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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반 강의가 시작되기 전, 수강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2층 강의실 옆에 딸린 서재에서 마주앉은 목 교수님은 “뭐가 궁금한데? 차 한 잔하고 시작해요”라며 기자를 반겼다. 변함없이 크고 경쾌한 목소리는 이전 동국대 교정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던 시절과 다를 바 없었다. 30여 년간 한국 불교학의 거목으로 이름을 날렸던 목 교수는 최근까지 몸담았던 서울불교대학원대학의 총장 임기를 끝마쳤다. 대학원대학은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석사학위자 7명을 배출시켰다. 주로 불교응용학문 분야의 전공이 많은 대학원대학은 불교를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편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내 역할이 끝났으니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나왔지. 이제 어디 억매이지 않고 부담 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더할 수 있으니 잘된 일이야.” 홀가분한 표정의 목 교수는 최근 동국대 대학원과정을 지도하면서 대한불교법사회 이사장으로서 재가법사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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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교수는 1937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모태신앙으로 중 3때 이미 부산 대각사에서 불교학생회를 조직하는 등 불교와의 인연은 어린시절부터 각별했다. 경봉 스님 문하에도 잠깐 있었다. 58년에 동국대에 입학해 75년 불교학과 전임교수가 됐다.
불교교리사와 계율학의 권위자로 한때 불교계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손꼽히기도 했다. 중앙대 부총장 박범훈 교수, 동국대 불교학과 신성현 연구교수, 차차석 박사, 원광대 선주선 교수 제주교대 고대만 교수 등 그가 길러낸 불교 석ㆍ박사가 수십 명이고 불명을 지어준 이만 1500명이 넘는다.
동국대가 있는 목멱산을 오른 지 50여년이 다돼가지만 자신에겐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여전히 동국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지도하기위해 출강한다. ‘천재’ 또는 ‘괴각’으로 불렸을 만큼 동국대 최고의 명물(?)이었던 그는 늘 “내가 죽으면 화장한 뒤 동국대 캠퍼스에 내 뼈를 뿌려줘요, 그럼 인연되는 불종자를 하나 만나 환생하면 내세에도 다시 불교를 위해 평생을 살다 갈거요”라고 말한다. 동국대는 그의 분신이고 그는 동국대의 분신이다.
□ 35년 재가교육에 매진
목 교수가 재가불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대원불교대학에서 부터다. “대원불교대가 처음 생긴 그때는 장경호 할아버지가 계실 때야”라며 당시 영암 스님, 성호 스님, 조명기, 김동화 박사 등과 함께 했던 시절을 회고 했다.
“그때 내가 강사로는 가장 어린 꼬마 였는데, 내 강의가 목요일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목요일에는 목정배를 만나요 하면서 떠들고 다녔거든. 그렇게 해서 내 강의가 유명해 졌지 허허” 목 교수는 그 뒤 꼬박 35년째 재가자 교육에 헌신해오고 있다.
목 교수는 최근 법사불교대학의 수강생들에게 자신이 35년간 강의했던 내용 가운데 가장 정수라고 생각하는 원효의 3대 종요(宗要)를 묶어 가르치고 있다. 3대 종요는 해동보살이라 일컫는 원효 스님을 사표 삼아 불교의 공사상을 바로알고 일승보살을 이뤄 아미타정토를 발원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목 교수는 사실상 자신의 재가자교육을 회향하는 의미라고 했다.
목 교수가 직접 정리한 원효의 3대 종요는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3권이다. <대혜도경종요>는 반야사상, <법화경종요>는 법화사상, <무량수경종요>는 아미타사상이 그 핵심이다. 앞의 두 권은 이미 마쳤고 오는 연말까지 <무량수경종요>강의를 모두 마무리 할 계획이다.
일생을 매달려온 재가 교육은 지금의 목 교수를 있게 한 큰 힘이다. 목 교수의 강의를 듣는 이들은 보통 10수년 이상 수강을 계속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웬만한 한문 원전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가는 수준급 불자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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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법사불교대학의 강의를 끝나는 대로 준비 중인 3가지 원력을 계획하고 있다. 먼저 ‘불교교리사상사’를 정리 하고 있다. <불교윤리개설><불교교리사><한국문화와 불교><대승보살계사상> 등 자신의 책들 가운데 불교교리 전반을 집대성한 ‘사상사’ 중심의 저서를 새로 발간할 계획이다.
또 고구려 불교사에 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구려, 발해지역의 불교사를 관심 있는 젊은 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기 위해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석남, 혜자, 담징 뿐만 아니라 불교전래 이전의 스님들에 대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과 북한에 산재해 있는 고구려 유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일단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의 황유복 교수와 공동으로 종교적, 문화적 고구려 불교사 연구를 위한 구체적 계획 준비하고 있다. 이미 장춘, 선양, 장백 등 옛 고구려의 일부 지역을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내친김에 한국 불교의 찬불가를 다시 정리하려는 욕심도 내고 있다. 9월 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명창 최영숙의 창작 소리극 ‘아! 도라산’이 개막됐다. 중앙대 박범훈 교수가 곡을 만들고 목 교수가 가사를 붙였다. 시인으로도 유명한 목교수가 직접 작사한 노래 한둘이 아니다. 엄숙하기만 한 예식용 찬불가를 좀더 활기차고 장엄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평소 애주가에 애연가로 유명한 목 교수는 얼마전 이 두 가지 모두를 끊었다. 비결을 물었다. 먼저 “술은 ‘돈주(頓酒)’로 끊었지” 라며 거침없이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담배는 끊기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담배는 ‘돈오(頓悟)’ 끊었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래도 지인들과 술집을 가게 되면 조금은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아! 이제는 손이 안가, 훈습(薰習)이 완전히 끊긴 게야”라며 짧게 답했다. 요즘 세상에 술, 담배를 끊은 것이 뭐 대단한 자랑일까 싶었지만 그는 참선이든 뭐든 ‘돈오’만이 일체적 여래지로 가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순간, 기자는 그 짧은 대답 속에서 한 평생 깨달음의 방편을 찾기 위해 정진해온 노학자의 담담한 자기고백을 대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