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급 유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사자암 3층 석탑(전북 익산)이 사장 위기에 처해 있다. 이 탑이 처음 세상에 알려 진 것은 1993년. 하지만 10년이 넘게 관할 지자체의 무관심과 허술한 문화재 관리 및 보존대책 등으로 지금껏 방치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8월 20일 대웅전 기단공사 중 연꽃문양이 새겨진 옥개석이 돌더미 속에서 다시 발견됨으로써 드러났다. 이 옥개석은 1993년 이 절 요사채 불사 중 이미 출토되었지만 문화재적 가치가 희박하다는 지자체의 판단에 따라 다시 묻어뒀던 것이다. 이 옥개석을 발견한 사자암 관계자는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8월 23일 석탑전문가인 원광대 前 총장 김삼룡 박사와 단국대 박물관장 정영호 교수 등 5명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전남문화재위원은 “다시 발견된 이 옥개석은 사자암 3층 석탑의 1층부의 것이 확실하고, 잊혀 졌던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며 “이 석탑은 도피안사 3층 석탑(보물 제223호)의 기단부 8각모양 탑신과 같은 형태로서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북문화재위원회는 ‘석탑의 기단석에서 상층의 옥개석 부분의 정형성이 없고, 훼손이 심하다’는 이유를 들어 지정문화재등록 부결처리 결정을 내려 학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조사단은 ‘사자암 3층 석탑은 10세기 초 고려시대의 탑. 기단부 탑신이 8각 모양인 사자암 3층 석탑은 중요한 사료(史料)적 가치가 있고, 보물급 문화재지정 가치 있음’의 사유를 들어 전북문화재위원회에 지정문화재등록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를 검토한 관련기관은 “탑의 훼손상태가 심하고, 1·3층 옥개석이 원형(原形)이 아닌 것으로 여겨져 지정문화재로 등록할 수 없다”며 부결시켰다.
이에 대해 사자암 3층 석탑을 조사했던 전문가들은 “비록 이번에 발견된 옥개석이 반쪽만 남아 있고, 탑의 훼손정도가 심할지라도 충분히 보물급 가치가 있다”며 부결처리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탑의 기단부 탑신만 8각 모양을 한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도피안사 3층 석탑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러한 석탑 형태는 고구려 팔각목탑양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고구려 목탑형태가 백제지역인 익산 사자암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고대의 석탑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황수영 박사와 함께 조사를 참관했던 한 관계자는 “이렇게 귀중한 보물급 석탑을 알아보지 못하고 부결 처리한 문화재위원들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며 개탄했다. 석탑 전문 문화재위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같은 오판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는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석탑만 전문적으로 연구한 위원은 두 명 남짓에 불과한 실정이다. 때문에 보물급 석탑이 발굴·발견돼도 사장될 위험이 항상 잠복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삼룡 박사는 “충분한 가치가 있음에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며 “더 우려스러운 점은 지정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하면 개·보수비용이 전혀 지급되지 않아 문화재가 훼손돼 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며 당국과 지자체의 관심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