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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을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에는 중국, 미국, 러시아 등 8개국 15명의 학자가 참석했다. 중국학자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논리에 반대하며 고구려 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북한에서는 직접 참가하지 못했지만, 4편의 논문을 보내와 학술적인 연대 의지를 보여줬다.
중국에서는 ‘심양 동아시아연구중심’의 손진기 씨와 손홍 씨가 참석해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를 놓고 한국 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특히 손진기 씨는 중국 내 한국고대사 권위자로 통하는 인물로,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의 입장에서 고구려사가 중국사임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손 씨는 “고구려의 역사상 귀속 문제 당시의 정치적 예속 측면에서 봐야하며, 역사 계승 문제는 현재의 국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기환 박사(고구려연구재단)는 영토중심주의적 사고라 비판하며 맞섰다. 또 고구려 인구의 다수가 중국에 통합됐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것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것이었다”며 “삼국민간에 형성된 동류의식이 더 유의미한 것이다”고 말했다.
학술회의는 17일 오전까지 계속되며, 오후에는 발표자를 포함한 참가자들의 아차산 홍련봉 고구려 유적 답사가 있을 예정이다.
고구려연구재단 김정배 이사장은 “이번 학술회의가 동북공정 관련해 해외학자에게 허구성을 알리고, 중국의 역사왜곡의 피해자인 주변국가들과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장이 될 것이다”며 “고구려 연구를 심화하는 한편 국제학술회의와 영문잡지 발간 등을 통해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알려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 발표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중국사서에 나타나는 해동삼국’ 김정배 고구려재단 이사장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고 있는 ‘海東三國’이란 용어에 주목하여 삼국이 각각 독립된 국가이자 지역적으로 함께 이웃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 명칭이 사용됐다. 즉 중국 스스로가 고구려가 우리나라 역사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 ‘국호 고구려·고려에 대한 일고찰’ 박용운(고려대)
고구려 시기부터 이미 고려(高麗)라는 국호가 함께 사용됐으며 궁예 역시 고려를 국호로 채택하는 등, 구려(句麗)ㆍ고구려(高句麗)ㆍ고려(高麗)라는 용어는 1400년 이상 오랫동안 국호로 널리 사용되었다.
▷ ‘고구려 도성의 변화 발전 과정으로부터 본 고구려 평지도성의 특점’ 방학봉(연변대 발해학 연구소)
고구려의 도성이 산성으로부터 전형적인 평지성과 산성이 밀접히 결합하여 한 개의 방어체계를 형성한 평산성(平山城)으로 발전했는데, 이런 특징은 당시의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자적인 양식이다. 고구려는 70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경유하는 가운데 특이하고 독창적인 도성문화(都城文化)를 창조했는데, 이는 마땅히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다.
▷ ‘전투방식과 생활풍습을 통해 본 고구려의 조선적 성격’ 조희승(북한사회과학원)
고구려가 산성을 강고하게 축조하고 전투방식을 많이 활용한 것, 그리고 그 산성을 돌로 축조한 것 등은 조선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온돌, 발방아, 식생활 등의 문화생활에서도 중국과는 달리 백제ㆍ신라ㆍ발해 등과는 동일한 풍습과 문화를 지닌 같은 민족이다.
▷ ‘삼국시기의 주민구성에 대하여’ 강세권(북한사회과학원)
고구려 주민들은 예나 맥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단군조선 시기에 그 영역 안에서 살면서 이미 하나의 민족을 이룬 사람들인 고조선ㆍ부여ㆍ옥저ㆍ예 등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다. 즉 고구려인ㆍ백제인ㆍ신라인은 그들이 속한 나라 혹은 거주한 영역에 따라 편의상 구분해 부르는 지역별 호칭일 따름이지 민족이 달랐던 것은 아니며 모두 고조선의 후예로서 한민족이었다.
▷ ‘고려·조선시대의 고구려 관련 기록’ 던컨(미국 UCLA)
국가 정체성에 관한 주요한 작업으로 사서기록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고려·조선 시대에 간행된 많은 사서에 고구려사 관련 기록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고구려사를 한국의 역사적 유산으로 영속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견지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를 19세기 산물로 간주하는 것은 오류이며 고구려사에 대한 한국인의 정체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 ‘발해 문화 형성에 있어서 고구려의 영향’ 겔만과 볼딘(러시아)
크라스키노 성터의 축조방식, 구들의 방고래 제작, 사방을 가리키는 우물의 받침 등은 고구려 문화양식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