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혜선 스님: 우리가 계율이 안 지켜지고 있는 것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현상은 한국불교가 지금 편의주의에 빠져 있어서라고 본다. 그리고 개인주의 문제도 심각하다, 게다가 형식주의에 편승하는 것도 문제다. 종헌종법이 계율에 근거하도록 다시 변해야 한다.
혜능 스님: 엄한 규칙만 가지고는 안 된다. 엄한 율을 정해놓으니 계가 잘 지켜졌나? 지금 우리 승단에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안 들킬까하는 생각이 팽배해 졌다. 다들 안 들키면 괜찮고 걸리면 재수 없어서 그랬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제제를 안받기 위해 율 지키겠다는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나? 단순한 율 하나라도 승단과 자신을 위한 의지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제제할 성격은 아니다. 승단이 제제한다 해도 개인의 업성까지 녹일 수는 없으니 종단이 계몽해야 한다.
해강 스님: 계율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해결하려면 승단이 계율을 수행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논주는 율장이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저는 계율 또한 법담의 주제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논의도 활발해진다. 정말 율장이 논의의 대상이 아닌지 논주에게 묻고 싶다.
도법 스님: 계율 지켜지지 않는 것은 다각적인 부분에서 보아야 한다. 당위론으로 계율을 강조하지 않는 역사가 없다. 늘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는데 여기서 해결점 없다. 원칙론으로는 해답이 안나오니 이것을 넘어서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절집 40년 살아왔는데 계율 잘 지킨 분들은 매력이 없다. 생각도 형식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배타적이고 해서 수행자로서 인간적인 매력을 못 느끼겠다. 한국불교는 그동안 모두들 선 중심으로 미화돼 왔다.
또 하나는 경전과 계율에 대해 역사적인 눈으로 공부하지 않는 점 지적하고 싶다. 법이야, 율이야 하면서 역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이야기하면서 깨달음이 신비화되고 있다. 계율에 대한 인식도 왜곡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계를 지킴으로 믿음이 없던 사람이 믿음이 확실해 지는 것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계율이 활용돼지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결계십구의 예가 앞이다.
계율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자리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경전 결집과정서 가섭존자가 정리 안되니 부처님 정한 것, 정하고 고칠 것 고치자고 했다. 우리는 이것을 절대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계율이 가섭존자가 정리된 것과 같이 정리돼 왔나. 계율에 대한 당시 상황에 맞는 새로운 해석이 따르지는 않았나? 그동안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무시하고 소소한 계는 파악하지 않고 율장만을 곧이 곧 대로 강조하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고쳐지고 삭제된 역사적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다뤄야 한다.
법조 스님(길상사): 대만에서 유학을 했다. 거기서는 율사는 최고의 공경 대상이다. 재가불자들이 먼저 계를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재가자들이 스님들이 어떤 계를 지켜야 하는지 계율을 잘 안다. 이것은 스님들이 재가자에게 먼저 교육을 시킨 결과다. 계를 지키지 않는 스님은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풍토가 확실히 잡혀 있다. 대만은 스님들의 의복이 모두 기준이 잡혀 있지만 우리는 승복도 제각각이다. 내면은 제쳐 두고서라도 기본적인 위의도 지켜지지 않는데 재가 불자들에게 공경 받을 수 있겠나? 편의주의적인 모습부터 타파해야 한다.
혜능 스님: 계율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 우리도(율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와 율의 제정 정신과 계기를 먼저 살펴보려고 노력한다. 율이 우리의 청정성과 화합성을 돌려줄 수 있다면 나름대로 얼마든지 수정되고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법 스님: 겉으로 수행의 위의를 잘 지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속으로도 계와 율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는다하더라도 법을 살아있게 만들어야 한다.
법인 스님: 개인적으로 어릴 때 선배스님들 한테 들었던 얘기는 만공스님, 남전스님의 기행들 깨달음에 이른 이야기들뿐이다. 부끄럽게도 계율을 어떻게 잘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해준 사람이 없었다. 제가 출가하던 때 조차도 제대로 계율이 교육 안 된 것 인정한다. 계정혜를 개념으로만 정의 했지 계의 중요성은 강조 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재연 스님: 계율을 깨달음으로 가는 수단이나 방편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계율의 실천이 깨달음의 실천과 다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계율자체를 절대시 하지 않아야 한다. 계율의 실천자체가 깨달음으로 가는 진행과정이다.
법인 스님: 종단에 공권정지, 제적, 멸빈 등 각종 징계가 있다. 계율을 어겼을 때 각종 징계조항들 있지만 실제 의미를 못 살리고 있다. 참회정신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말해 달라
혜능 스님: 잘못을 다시 뉘우치고 참회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다시 수행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게 율장의 참회다. 벌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이 뉘우치고 부끄러워하게 하고 다시 수행에 전념하게 한다. 참회의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혼자 하는 참회, 대중 앞에서 하는 참회, 스승에게 하는 참회 등 이제는 참회의 방법들까지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