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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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 멸빈처분, 적절했는지 재검토 필요하다”
혜능 스님 주장, 선우도량‘계율과 수행'서
다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혜선 스님: 우리가 계율이 안 지켜지고 있는 것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현상은 한국불교가 지금 편의주의에 빠져 있어서라고 본다. 그리고 개인주의 문제도 심각하다, 게다가 형식주의에 편승하는 것도 문제다. 종헌종법이 계율에 근거하도록 다시 변해야 한다.

혜능 스님: 엄한 규칙만 가지고는 안 된다. 엄한 율을 정해놓으니 계가 잘 지켜졌나? 지금 우리 승단에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안 들킬까하는 생각이 팽배해 졌다. 다들 안 들키면 괜찮고 걸리면 재수 없어서 그랬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제제를 안받기 위해 율 지키겠다는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나? 단순한 율 하나라도 승단과 자신을 위한 의지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제제할 성격은 아니다. 승단이 제제한다 해도 개인의 업성까지 녹일 수는 없으니 종단이 계몽해야 한다.

해강 스님: 계율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해결하려면 승단이 계율을 수행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논주는 율장이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저는 계율 또한 법담의 주제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논의도 활발해진다. 정말 율장이 논의의 대상이 아닌지 논주에게 묻고 싶다.

도법 스님: 계율 지켜지지 않는 것은 다각적인 부분에서 보아야 한다. 당위론으로 계율을 강조하지 않는 역사가 없다. 늘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는데 여기서 해결점 없다. 원칙론으로는 해답이 안나오니 이것을 넘어서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절집 40년 살아왔는데 계율 잘 지킨 분들은 매력이 없다. 생각도 형식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배타적이고 해서 수행자로서 인간적인 매력을 못 느끼겠다. 한국불교는 그동안 모두들 선 중심으로 미화돼 왔다.

또 하나는 경전과 계율에 대해 역사적인 눈으로 공부하지 않는 점 지적하고 싶다. 법이야, 율이야 하면서 역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이야기하면서 깨달음이 신비화되고 있다. 계율에 대한 인식도 왜곡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계를 지킴으로 믿음이 없던 사람이 믿음이 확실해 지는 것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계율이 활용돼지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결계십구의 예가 앞이다.

계율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자리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경전 결집과정서 가섭존자가 정리 안되니 부처님 정한 것, 정하고 고칠 것 고치자고 했다. 우리는 이것을 절대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계율이 가섭존자가 정리된 것과 같이 정리돼 왔나. 계율에 대한 당시 상황에 맞는 새로운 해석이 따르지는 않았나? 그동안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무시하고 소소한 계는 파악하지 않고 율장만을 곧이 곧 대로 강조하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고쳐지고 삭제된 역사적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다뤄야 한다.

법조 스님(길상사): 대만에서 유학을 했다. 거기서는 율사는 최고의 공경 대상이다. 재가불자들이 먼저 계를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재가자들이 스님들이 어떤 계를 지켜야 하는지 계율을 잘 안다. 이것은 스님들이 재가자에게 먼저 교육을 시킨 결과다. 계를 지키지 않는 스님은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풍토가 확실히 잡혀 있다. 대만은 스님들의 의복이 모두 기준이 잡혀 있지만 우리는 승복도 제각각이다. 내면은 제쳐 두고서라도 기본적인 위의도 지켜지지 않는데 재가 불자들에게 공경 받을 수 있겠나? 편의주의적인 모습부터 타파해야 한다.

혜능 스님: 계율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 우리도(율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와 율의 제정 정신과 계기를 먼저 살펴보려고 노력한다. 율이 우리의 청정성과 화합성을 돌려줄 수 있다면 나름대로 얼마든지 수정되고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법 스님: 겉으로 수행의 위의를 잘 지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속으로도 계와 율의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는다하더라도 법을 살아있게 만들어야 한다.

법인 스님: 개인적으로 어릴 때 선배스님들 한테 들었던 얘기는 만공스님, 남전스님의 기행들 깨달음에 이른 이야기들뿐이다. 부끄럽게도 계율을 어떻게 잘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해준 사람이 없었다. 제가 출가하던 때 조차도 제대로 계율이 교육 안 된 것 인정한다. 계정혜를 개념으로만 정의 했지 계의 중요성은 강조 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재연 스님: 계율을 깨달음으로 가는 수단이나 방편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계율의 실천이 깨달음의 실천과 다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계율자체를 절대시 하지 않아야 한다. 계율의 실천자체가 깨달음으로 가는 진행과정이다.

법인 스님: 종단에 공권정지, 제적, 멸빈 등 각종 징계가 있다. 계율을 어겼을 때 각종 징계조항들 있지만 실제 의미를 못 살리고 있다. 참회정신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말해 달라

혜능 스님: 잘못을 다시 뉘우치고 참회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다시 수행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게 율장의 참회다. 벌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이 뉘우치고 부끄러워하게 하고 다시 수행에 전념하게 한다. 참회의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혼자 하는 참회, 대중 앞에서 하는 참회, 스승에게 하는 참회 등 이제는 참회의 방법들까지 가르쳐야 한다.
조용수 기자 | pressphoto@buddhapia.com |
2004-09-04 오후 1:34:00
 
한마디
위의 분의 말씀을 읽으니 예수가 창녀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에게 한 말이 연상되는군요. 참으로 자비스러우십니다. 님같은 분만 계신다면 한국불교가 새로워지겠습니다. 나는 늘 의심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냉정한 승려들 특히 사판승들이 요즘은 왜 그렇게 멸빈하신 분들을 구제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불법을 편다면 기독교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나는 주지도 종회의원도 아닌 평범한 승려이기 때문에 의도가 있다고 해도 펼 소용이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정치적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님이 언급한 그런 승려들을 혐오할 뿐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요. 총림의 율원장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발표하신 말씀에 이의를 제기한 것 뿐입니다. 나는 율원장이 어떤 분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훌륭한 분이시겠지요. 나에게 의도가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율원장님께서는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지 마시고 한국불교에 계율이 바로 지켜져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국불교의 정치는 사판승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저도 심정적으로는 멸빈당하신 모든 분이 구제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한국불교의 앞날에 도움이 된다면 말입니다. 이런 글을 쓰야하는 한국불교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불법을 홍포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토론을 해야 할 시간에 말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치는 사판승에게 맡기고 율원장님께서는 그런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요. 그것이 우리같은 평범한 승려에게 희망을 잃지않게 하는 일입니다.
(2004-09-07 오후 12:57:51)
21
종단과 불교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불법을 해안 자들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들을 멸빈에 이르게 한 이들은 과연 그럴만한 자격이나 도덕성이 있는 이들이었습니까? 단지 혜능스님은 근본 계율에 비춰 봤을때 멸빈이라는 것이 맞지 않다고 발언한 것 뿐이오. 총림의 율원장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려는 편협하고 사고가 종단을 이지경으로 만든 것 아니오. 그들은 지난 과오를 참회 한다고 했고 사실상 종단의 일선에 나오는 것이 불가능 한 이들인데 그런식의 징계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합당한지 재고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것 아니오 종정예아의 교시가 있었고, 원로위의 유시가 내려 졌는데도 승단의 위계를 무시하면서 까지 고집을 꺽지 않은 것은 무슨 의도를 가진것인지 의심스럽소.
(2004-09-06 오후 11:25:09)
19
문수보시요라고 쓰신분 보시요. 혜능스님이 멸빈을 받은 사람들이 정당한지 정치적인 처분을 받았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가당하다고 생각하시요. 종단과 불교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불법을 해한 자들임에 분명한데 시간이 지났다고 해결이 됩니까. 그 때문에 이땅에서 부처님 법은 무시당하고 많은 지식인들이 불법에 귀의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현실을 모르십니까.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부처님법을 선양하지 못하고 더욱 먹칠을 한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소. 출가자는 편법이 아니라 원칙을 고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편법은 속인들이 생활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출가자들에게는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멸빈제도폐지에 서명하지 않은 혜능스님은 정말 정치적인 행동을 하신 것 같군요. 본인의 말에 의하면 율장에 멸빈제도가 없다면 계율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서명하셔야 마땅합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곤란할까봐 서명하지 않으신것이 아닐지요.
(2004-09-06 오전 10:39:01)
19
율이란 현시대적 법률이다 법은 시대가 변하고 현실이 변하면 율도 제정 되어야 하는것으로 봅니다. 과거 부처님 시절을 바라볼것이 아니라 파순이가 부처님을 종용하여 열반에 들게하고 돌아나오면서 마음으로 중얼거린 말 기억하시지요 후 오백년이 되면 나의 악마의 종자를 부처종자로 심어놓을 것이다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부처님은 알고도 써디선미소로 자책하고 가신것을 잊어셨는지요. 문수스님 말씀 처럼 계율을 더욱 강화하여 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더욱 엄중처리 하여 승단에 아니 승으로서 존재할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승단에서 제적되면 타 종단으로 옴겨가 다시 그런 행동을 계속한다면 제가 불자나 나라전체 불자들이 그런 자들로 인해 승단전체가 흔들리고 스님전체를 그런 쪽으로 인식되어 가는 것이 아님니까. 불자가 스님을 불신하는 첫째이유가 바로 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율이 너무 가벼워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사료 되는 군요.
(2004-09-06 오전 7:43:15)
20
혜능스님 말에 어디 현행 종헌종법상 멸빈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던가요. 혜능스님은 현행 멸빈제도를 없애자고 서명을 요구하는 것에 서명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멸빈제도가 있는데, 그제도의 요건에 맞게 멸빈이 행해졌는지, 또한 그 요건자체는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글좀 읽고 비판합시다
(2004-09-05 오후 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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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스님이 말한 참회란 무엇인가. 입으로 참회했다고 다 참회한 것이라면 누군들 못할 것인가. 율장에 멸빈이 없다고 한다는 그 때는 최소한 지금 멸빈당한 그런 몰지각한 행위를 한 승려는 없을 것을 전제했을 것이다. 적용이란 때와 장소에 맞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율원장인 스님이 더 잘 아실텐데요. 대중이 그들을 섭수하는 것과 율장에 의해 멸빈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과는 천지차이가 있다. 이런 문제는 이럴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을 뿐아니라 한 총림의 율원장으로서 해야 할 말이 아니다. 한국불교가 이 모양이 된 것은 바로 혜능스님과 같은 사고 때문이다. 계율을 넘어 부처님법을 혜친 자는 멸빈되어 마땅하다. 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멸빈시키지 못한 종단이 무능하다고 본다. 사미나 사미니처럼 승랍이 적은 승려라면 이해가 되지만 몇 십년을 수행했다는 승려들이 할 짓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불교를 수행한 결과가 그와같은 몰염치한 사람을 만든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그런 상황이라면 누가 불교의 수행을 하겠소. 계율 계율 그만하고 부처님이 계율을 제정한 본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요. 계율 조항이란 그것에 100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모르십니까. 개인적으로 본다면 그들을 다 섭수해야 하지만 종단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멸빈을 인정해야 한다. 믕식물에 독물을 넣은 사람을 중국사람들은 사형에 처할 때 인간적으로 그들을 동정하는 것보다 더 많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이라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들은 이 시대 한국불교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짓을 한 승려의 표본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사실 멸빈이라고 하지만 모두들 절집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그것만으로도 자비를 베푼것이라고 생각한다.
(2004-09-04 오후 4: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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