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란 죽은 뒤가 아니고는 유용성이 인정되지 않는 존재이리라.”(작곡가 드뷔시)
현대에 들어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음악가와 미술가, 작가 등 예술가들에게서 공통된 키워드를 뽑아낸다면 살아생전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게르니카의‘피카소’, 절규의‘뭉크’, 자화상의‘샤갈’ 등 미술가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올해로 탄생 1백주년을 맞은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1904~1985) 역시 75세를 넘어서까지도 화단에서 주목 받지 못했다. 오히려‘왜색풍’이란 혹평속에서 화단의 주변만을 맴도는 불우한 화가였다. 그러다 죽기 7년전인 78세가 돼서야 겨우 백상기념관 개인전(1981),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개인전(1984), 사후 호암 미술관 유작전(2002) 등 단 세 번의 전시를 통해 한국현대미술사의 한 획을 긋기 시작했다. 이유는 한국적인 이미지를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근대 채색화의 대가란 것이었다. 생전에 이런 평가가 내려졌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그의 탄생 1백주년을 맞은 올해 더욱 강하다. 그러나 그는 갔어도 그가 남긴 작품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늦게나마 현대갤러리(9월 8~24일)와 경기도 용인 이영미술관(9월 17일~10월 31일)에서 그를 기리는 대규모 회고전이 잇달아 열린다.
갤러리 현대는 미술평론가 이구열 씨와 박 화백의 막내아들 박정 씨 등이 중심이 된 박생광기념사업회와 함께 회고전을 마련한다. 80년대 그의 대표작들인‘무속’‘불교’‘인도시리즈’ 등 수묵채색화 50여점과 인도 성지순례에서 그린 스케치 30여점, 편지와 화구 등 유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이외에도 원효대사, 이순신, 전봉준, 명성황후 등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화 시리즈와 토속적이고 민족성을 찾아낸 단청 기법의‘무속’과‘불교시리즈’도 집중 소개된다. 특히 박 화백이 세상을 떠나기 4일전까지 그렸다는 미완성작‘피리부는 노인’을 보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온갖 악귀를 밟고 악기를 부는 노인의 슬픈 모습이 담겨져 있어 안타까움을 전해준다.(02)734-6111
이영미술관의‘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박 화백이 45년 해방을 맞아 일본에서 귀국해 경남 진주에서 살던 1960년대까지 연대순으로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벽에 걸었다. 독창적 세계가 짙은‘무녀’‘토함산 일출’ ‘무위사의 관음’ ‘시왕도’ 그리고 말년에 주로 그린 ‘녹두장군’ ‘명성황후’와 같은 역사인물화를 합쳐 1백여점이 전시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케치 40여점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박 화백과 진주농고 동창이자 절친한 죽마고우였던 청담 스님을 그린‘청담 스님 영정’(이영 미술관 소장)과 ‘청담 스님’(도선사 암자인 현성정사 소장) 등 미공개 작품 10여점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031)213-8223
한편 부산광역시립미술관(051-744-2604)도‘동양의 샤갈’이란 주제로 박생광 회고전을 11월말부터 연말까지 개최한다.이외에도 진주 경남도립미술관(055-211-0333)에서는 9월 9일~11월 4일, 진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12월 28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기념전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