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선원입니다. 참배객 등 일반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사찰 경내 그중에서도 선원(禪院)이 있는 곳이면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문구다. 일주문 밖 매표소를 들어갈 때 설령 관광 온 기분이 들지라도 촌철살인 같은 ‘일반인 출입금지’라는 내용을 보는 순간 바로 이곳이 속세와 격리된 외딴섬(?)이라는 외경심이 전해진다.
<암자로 가는 길>의 저자 정찬주 씨가 이번에는 암자가 아닌 바로 전국의 선방들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한데 모아 책을 펴냈다. 바로 <선방 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전국 선원(禪院)에 대한 가이드북 정도로 생각한다면 적절치 못하다. 선방(禪房)을 선방답게 만들어주는 참된 선승(禪僧)들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구름에 달가듯이 흘러가는 ‘나그네’임을 자칭하는 저자가 몸소 답사한 선원은 백양사 운문선원을 비롯해 봉암사 태고선원, 해인사 소림원, 백장암 백장선원, 상원사 청량선원 등 총 15곳. 이 곳에서 저자는 깨달음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선지식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엄격함과 따스한 수행의 향훈을 저자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필체로 들려준다. 특히 그 선지식들중에는 해인총림의 혜암 방장 스님, 봉암사 태고선원의 서암 조실 스님, 성륜사 청화 조실 스님, 백양사 고불총림의 서옹 방장 스님과 같이 최근 2~3년 사이 입적해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이들도 포함돼 잠시나마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지난해 입적한 청화 스님은 백장암 백장선원에 머물며 수행할 때 수건 두 장을 벽에 걸어놓고 살았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면 “공부하다 보면 감사한 마음이 끝이 없어서 자꾸만 눈물이 나므로 걸어놓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혜암 스님은 “적게 먹고 공부하다 죽어라”는 말을 남기며 무엇을 일단 하기로 맹세했으면 전 인생을 걸어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서옹 스님은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도 산 사람이 있다”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과연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겠느냐”고 일갈했다고 한다.
선방 생활이 견디기 힘든 고된 수행이라는 것은 성철 스님 제자이자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의 일화에서 잘 알 수 있다. 추운 겨울, 찬밥을 양재기에 떠서 김치 조각 하나 놓고 대충 먹고는 돌샘으로 나가 찬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는 게 법전 스님이 드신 공양의 전부였다. 그래도 스님은 “마음을 밝혀 눈을 떠라. 뜨겁게 한 생을 걸고 화두를 참구해서도 마음을 밝히지 못한다면 몽둥이로 나를 쳐라” 고 자신을 재촉했다고 한다.
해인사 소림원의 용맹정진은 입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안거 때마다 1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장좌불와가 기본이고, 30분 이상 졸거나 자리를 비우면 즉시 퇴출 명령이 내려진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8년 장좌불와로 수행 정신의 극점을 보인 성철 스님은 단연 귀감이다. 하루는 수행자가 성철 스님께 ‘공부가 안 된다’고 하소연을 하자 스님은 바로 꾸짖었다고 한다.
“니 정말 공부는 해보고 하는 소리냐.”
이렇듯 선의 가풍이 살아있는 선방들의 풍경과 스님들의 일상, 여러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정갈하게 하게 정리한 저자의 글맛과 함께 사진작가 유동영의 빼어난 컬러 작품들이 선승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도 이 책의 두드러진 점이다.
이 책은 크게 두 갈래의 독특한 구성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 갈래는 치열한 구도의 현장에서 지혜와 진정한 나를 발견해가는 일종의 공간 여행이고, 다른 한 갈래는 선의 원류를 찾아 먼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르는 선객들의 계보를 찾아가는 일종의 시간 여행이다. 저자는 선의 정신과 진실한 나를 향해가는 이 여정을 통해 수행과 일상이 하나된 삶이야 말로 진정한 구도의 실천임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또한 이 책의 저술과 여정이 그리 녹록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서울을 떠난 것이 공연한 객기를 부린 것 같아 가슴 철렁할 때는 방벽에 초의 스님의 시 구절을 적어 놓기까지 했다. ‘청산이 바삐 움직이는 흰 구름을 보고 비웃는다’ 는 구절로 묵묵한 청산을 닮아 보고 싶은 마음에 이 구절로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재발심했다고 털어놓는다.
선방 가는길
글 정찬주
열림원
1만1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