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은 지난 6월 30일 제3차 단식정진을 시작했다. 고속철도 공단이 천성산 구간 공사를 강행하려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천성산의 모든 생명을 구하려는 스님의 외침은 단식을 통해 국민들에게 서서히 알려졌고, 마침내 단식 58일째인 8월 27일 스님의 생명이 경각이 이르면서 ‘법원 판결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전문가 검토를 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율 스님이 그동안 벌여온 ‘천성산 살리기’ 운동이 얻은 성과와 과제 등을 종합해 본다.
고속철 천성산 터널공사(원효터널, 총 13.5km) 건설을 놓고 벌어진 ‘천성산 문제’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속철도공단은 부산-대구간 고속철공사를 착공하기 위해 부산·경남권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고속철도 공단은 “특별히 보호가 필요한 동식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터널 공사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2002년 초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지율 스님은 처음 문제제기를 했다. 그리고 고속철도 공사를 시작하려 하자, 당시 ‘산감’ 소임을 맡고 있던 지율 스님은 “수달, 팔색조 등 천연기념물 11종과 환경부 보호야생동물 19종, 특별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무제치 늪 등 22개의 늪을 보유한 천성산이 환경영향평가 최하등급인 8~9등급으로 분류돼 공사를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할 것을 요구했다.
스님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공약으로 고속철 천성산 통과를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2003년 3월에는 노선검토협의회가 구성되면서 ‘천성산 문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그러나 노선검토협의회의 운영은 파행을 거듭했다. ‘천성산 문제’의 당사자인 지율 스님의 의견은 철저히 협의회에서 배제됐으며, 노선검토협의회는 1달 만에 현행 노선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2003년 3월 노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38일간의 단식정진을 벌인 지율 스님은 이해 8월경부터 다시 45일간의 제2차 단식, 40일간의 1천배 정진, 부산역부터 천성산 정상까지의 삼보일배 정진을 했다. 2004년 초 지율 스님은 고속철 천성산 구간에 대한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도롱뇽 소송’을 제기했지만 아직 심리 중에 있다.
이번 단식 정진의 직접적 성과는 청와대·건설회사와의 공사중단 약속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들과 불교계, 시민·환경단체들은 재판 판결에 승복한다는 전제 아래 고법 판결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지율 스님은 단식을 회향키로 8월 26일 합의했다.
이로서 불교계는 천성산 관통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전문가를 동원한 재검토와 도롱뇽 소송 승리를 위한 100만인 서명인단을 모을 여유 시간을 얻었다. 노 대통령의 공약파기와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의 약속 위반에 대한 사과를 받은 것도 성과중 하나다.
그러나 지율 스님의 급격한 건강악화로 인해, 환경영향평가에 준하는 재조사 작업을 벌이기 위해 필요한 ‘6개월 동안의 공사중단’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이제 남은 것은 도롱뇽 소송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천성산 구간에 대한 전문가 검토를 확실하게 실시해야 하며 소송 승리를 위해 100만인 서명인단을 모아야 한다. 전문가 검토가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100만인 서명인단 모집은 천성산 문제와 관련한 여론의 압력을 형성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재판이 앞당겨 진행되는 등 파행을 겪는다면 다시 한번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
환경단체간의 불신을 해소하는 것도 문제다. 노선검토협의회 활동을 거치면서 환경단체 상호간의 골이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많은 사람의 동참을 이끌어내야만 도롱뇽 소송인단 모집 활동도 활기를 띠게 될 전망이다. 새로운 생명살림의 가치관과 대안을 발견해 낼 필요도 있다. ‘천성산 문제’가 초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국민들의 눈에 맹목적인 반대로 비쳤다는 게 주요 원인이다. 환경 파괴가 국민들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며 거대 국책사업에 대응하기 위한 ‘불교 생명사상’의 논리를 정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양산에 위치한 천성산(해발 922m)은 특별 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무제치늪을 비롯해 밀밭늪 화엄늪 등 22개의 습지가 흩어져있는 한국 최대의 습지 지대다. 봄에는 철쭉꽃이 만발하는 4km의 내원사 계곡 등 아름다운 절경을 가지고 있다. 원효 스님이 화엄벌에서 1천여 중국 스님들에게 법을 베풀어 득도하게 했다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불린다. 2002년 천성산에 터널을 뚫는 ‘원효터널’ 공사를 시작하면서 ‘천성산 문제’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