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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총림 선암사 해제법어 발표
태고총림 순천 선암사는 갑신년 하안거 해제를 앞두고 8월 26일 칠전선원장 지허 스님의 해제법어를 발표했다.

지허 스님은 법어를 통해 "다시는 결제할 일이 없는 견성오도한 참 공부인이 공부를 마치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지사"라며 "해제 결제에 걸리지 말고 행주좌와간에 정진 또 정진하여 우리조사스님처럼 견성오도한 후 중생을 위하여 무엇을 도울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하안거 해제법어 전문이다.

갑신년 하안거 해제 법어
지허 스님(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사월보름 결제한 후 3개월간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부처를 얻으려 앉아 있었다면 옛 회양스님 말씀대로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 함이요, 마음을 얻으려 앉아 있었다면 거울을 갈아 기왓장을 만들려 함과 같습니다. 또 얻으려는 것 없이 그냥 앉아있었다면 시주밥 먹는 돌덩이 입니다.

시회대중이여!
하안거 3개월간의 일을 한번 말해 보십시오.

이 병납의 90일을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마당의 잡초를 다 뽑아버렸더니
온 도량이 모두 다 환해졌구나.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우리 부처님이 49년 동안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를 다 말씀하셨는데, 따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정법을 염화시중으로 보이신 것은 일체중생이 아승지겁(阿僧祇劫) 전에 본래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일원상(一圓相)이 있어서 하나의 법도 취할 것이 없고, 하나의 법도 버릴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땐가 일어난 허망한 미혹의 구름이 망상번뇌와 생사윤회를 가져와서 고통을 받으니 태초에 이루어진 무위진인에 돌아가 본래 청정한 진여자성을 깨치자는 것입니다.

이제 걸망을 메고 일주문 밖에 나가거든 발 닿는 곳마다 육근에 비치는 팔만사천의 경계가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안으로 잘 보시고, 경계경계가 밝은 것도 화두일념으로 비껴서고 어두운 것도 화두일념으로 비껴서야 합니다.

이때를 당하여 성성(惺惺)하면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모두 다 무용지물이요 한 찰라라도 육근경계(六根境界)에 들어 미혹에 빠지면 미륵불이 눈앞에 화현하더라도 철위산(鐵圍山) 속에 귀신굴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입니다. 유난히 무덥던 올 여름의 삼복더위가 가시고 입추를 지난 뒤 산들바람이 불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년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가을하늘은 높고 가이없어 푸르기만 한데 이 좋은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그 푸른 하늘에서 이 병납이 대중 앞에 한 마리 신룡(神龍)을 붙잡아 왔습니다.


대중거시신룡(大衆擧示神龍)?
대중은 신용을 보셨습니까?

탄구인허공(呑口因虛空)이구나.
허공을 다 삼켜버렸구나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이 신룡의 한 등어리에 타고 삼세를 자유자제로 왕래하셨고, 오늘도 이 병납이 신룡을 잡아 대중 앞에 내놓았습니다. 대중은 90일 결제를 마치고 오늘 해제를 하였으니 이 신룡을 잡아타고 시원하게 시방(十方)을 돌아 제망찰해(帝網刹海)를 마음대로 다니십시오.

고려 말에 이 신룡을 타신 우리 조사스님이신 태고보우국사스님의 삶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13세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 뒤 19세 때까지 6년간 일대시교(一代時敎)의 교학을 마쳤습니다. 교학을 마친 스님은 부처님의 49년 삼승십이분교가 모두 한마음에 있음을 절감하고 가지산 총림에 가셔서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를 참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님은 돈독하게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38세 때인 19년 만에 활연하게 조사관의 의단을 크게 타파하고 견성오도한 뒤 대자유인이 되어 지팡이 하나에 사대를 의지하고, 천하를 주유(周遊)하셨습니다. 속가에 가서 부모를 돌본 일도 있었고, 관음기도를 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양주 백운암에 이르러 할일을 다 마친 진정한 해제의 경계를 이렇게 노래하셨습니다.

아금장하위령인 我今將何爲令人
춘추동하호시절 春秋冬夏好時節
열향계변한향화 熱向溪邊寒向火
한절백운야반결 閑截白雲夜半結

내 이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거나
봄ㆍ가을ㆍ겨울ㆍ여름 어느 때든지 항상 좋아
더우면 물가에 가고 추우면 불을 쬐며
한가하면 흰 구름과 같이하고 밤이면 참선하네.

다시는 결제할 일이 없는 견성오도한 참 공부인이 공부를 마치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지사 입니다. 산다랭이 농사짓는 가난한 농부라도 농사가 잘되면 멀리 시집간 딸에게 쌀 한말이라도 부처 주고 싶고, 이웃에게 밥 한 그릇 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대도를 성취하여 생사대해를 해탈한 출격장부(出格丈夫)로서 생사고해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어찌 구제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태고조사스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는 일에 있어서는 춘하추동 어느 계절하나 좋지 않는 때가 없고, 추우면 불도 쬐고, 더우면 물가에도 가고, 한가하면 구름과 놀면서, 밤이면 대도를 성취한 선지식이라도 가부좌하고 선정에 들어 공겁(空劫)이 없는 일원상을 비춰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해제 결제에 걸리지 말고 행주좌와 간에 정진 또 정진하여 우리 조사스님처럼 견성오도한 후 중생을 위하여 무엇을 도울 것인가를 생각하는 때가 오도록 합시다.

자신에게 가진 것이 있어야 남을 돕습니다. 자신에게 가진 것이 없이 남을 돕는 다는 것은 거짓이요, 헛일일 뿐입니다.

출가사문이 가진 것이라곤 수행하여 견성오도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 깨달음으로 남을 깨달게 하는 것이 남을 돕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부처님과 조사스님이 말씀한 직지인심(直指人心)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며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입니다. 또 자리이타(自利利他)요 자각각타(自覺覺他)입니다.
박봉영 기자 | bypark@buddhapia.com |
2004-08-26 오전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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