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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정신치료학회(명예회장 이동식) 창립 30주년 기념‘도정신치료와 서양정신치료 국제포럼’에는 미국정신의학회 회장을 지낸 앨런 태즈먼 교수(미국 루이빌대), 인도정신의학회 비조이 바르마 회장, 월운 스님(동국역경원장), 종범 스님(중앙승가대 총장), 미산 스님(조계종 총무원 국제담당 특별보좌관), 박홍 신부(전 서강대 총장)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수도(修道)와 정신치료가 접목된 ‘도정신치료’를 낱낱이 해부했다. 한국정신치료학회가 내어 놓은 도정신치료란 무엇인지, 실제 정신치료 현장에서 도정신치료법이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도정신치료란
“애응지물(碍膺之物)을 없애면 기제각(旣除覺)”(대혜선사, <서장(書狀)>)
도정신치료를 창안한 이동식(85) 한국정신치료학회 명예회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정신치료는 애응지물(碍膺之物), 즉 마음에 거리끼는 것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정신분석에서 ‘핵심감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애응지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가 주목한 것은 치료자의 ‘공감’이요 ‘자비심’이다. 객관적인 관찰과 해석, 그리고 이론과 기법에 묶여있는 서양의 정신치료자와는 달리, 도정신치료의 치료자는 완전한 공감을 통해 환자와 주객일치를 이루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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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를 찾아 나선다(尋牛1), 다음은 소의 발자국을 보고(見跡2), 그 다음에는 소를 본다(見牛3). 이 세 단계는 핵심감정을 이해하는 단계에 해당된다. 초기에는 이 감정들이 부정적인 상태다. 다음은 소를 얻는다(得牛4). 이 단계는 이러한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느끼고 자각하고 있는 것에 해당한다. 그 다음은 소를 먹인다(牧牛5). 이 상태는 감정(소)을 놓치지 않고 부리고 또 갈등을 해결하기 시작하는 단계로서, 긍정적인 감정이 나타나 자라고 커지는 것을 나타낸다.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騎牛歸家6) 단계에서는 자신의 핵심감정을 인지하고 그로 인한 문제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소의 색깔은 흰 색으로, 사랑도 미움도 없는 ‘정심’을 나타낸다. 다음은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남아있다(亡牛存人7). 갈등은 해결되었지만 무아(無我)가 되지 못한 상태다. 이것이 이동식 회장이 말하는 서양의 정신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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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사람도 소도 다 잊어버린다(人牛俱忘8). 집착과 걸림이 없는 공(空)이며, 완전한 해방이고 무아다. 그리고는 본래면목으로 돌아간다(返本還源9). 자신이나 현실을 투사(投射)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저자거리로 돌아가 중생을 제도하는(立廛垂手10) 상태다. 자기 문제를 해결한 보살이 무아의 경지에서 중생제도에 매진하는 것을 뜻한다. 이동식 회장이 말하는 ‘치료자의 자비심’이 발할 수 있는 단계다.
이와 관련,‘ 보살이 되는 길과 정신치료자가 되는 길’의 주제를 발표한 강석헌 박사는 “정신치료자가 치료능력의 성숙도를 원한다면 보살의 계정혜 수련을 하는 것이 좋으며, 보살 수행자가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이에 앞서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정신치료의 실제 적용
‘정심의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치료자가 현장에서 환자를 마주할 때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이번 포럼에서는 정신의학계 행사로는 이례적으로 도정신치료 상담 현장 녹취록을 공개하며 도정신치료의 실제 사례를 선보였다.
공개된 녹취록은 총 4개의 사례로, 이동식 회장과 환자들의 대화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이야기로 이어지는 치료 당시의 대화들은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다. 보살의 자비심은커녕 직접적이고 일관성 없는 질문들에 일부 의사들은 당혹스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숭산 스님께 인가 받은 이래 20여 년 간 참선지도와 정신치료를 지속해 온 강자구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한다 하더라도 환자의 핵심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환자의 이해 능력에 따라 치료의 방법을 다르게 적용하며 환자와의 대화를 이끌어 간다. 그는 정신분열병 환자를 치료할 때도 보통 사람과 대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회장이 내세우는 ‘보살’은 ‘관용’과 ‘포용’의 뜻을 넘어서서 ‘각자(覺者)’의 개념에 가까운 의미다. 마냥 따뜻하고 상냥한 상담자이기에 앞서, 환자의 마음을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꿰뚫고 또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때 정신분석의 이론과 기술은 중요치 않다. 정심의 과정을 통해 무아의 경지에 선 ‘보살 치료자’는 환자가 진면목에 도달할 수 있도록 근기에 맞는 질문과 대답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 미국 인간주의 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에릭 크레이그(미국 어셤션대) 교수는 “치료자는 지속적으로 핵심감정에 집중하면서도 이를 지칠 줄 모르게, 한편으로는 부드럽게 다루고 있다”고 평한다.
예를 들어 보자. 0도에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던’ 것이 180도를 돌면 과거에 억압했던 부정적인 감정과 맞닥뜨리게 된다.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경계다. 치료자는 180도 경계에 선 환자를 ‘완전한 공감’을 통해 360도 지점으로 회복시킨다.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낸 이후 맞이하게 되는, ‘부정과 긍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경계’다. 위장이나 투사가 없는 현실, 즉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인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쥴리안 볼노이스(영국 로얄 정신의학원) 박사는 상담사례의 토론발표에 나서 이렇게 말했다.
“본질적으로 이동식 박사는 환자에게 열쇠를 건네주면서 문을 보여주고 ‘자물쇠’와 ‘자물쇠가 돌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뒤에 서서 그가 문을 통해 걸어가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