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의 단식 52일째인 8월 20일, 조계종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와 고속철도공단의 조속한 결단을 당부하고 지율 스님에게 극단적 방법 지양을 요청했다.
조계종은 대변인 여연 스님(총무원 기획실장) 이름의 성명서에서 “합의가 무산된 1차적인 원인은 경제적 이익에만 눈이 먼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아집과 독선 때문이라고 판단한다”며 “국민 모두가 진정으로 바라는 궁극적인 행복은 무엇인지 고속철도건설공단과 정부의 관계자들은 뼈저리게 인식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계종은 지율 스님에 대해서도 “목표가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수행자는 방법과 절차를 실현해나감에 있어 반대하는 입장까지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챙겨볼 수 있어야 한다”며 “한 생명의 죽임이 다른 모든 생명의 죽음이 되기도 한다는 스님의 주장이 그대로 스님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뜻이 이미 천하에 알려졌음을 인지하여, 극단적 방법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성 명 서
뭇 생명의 터전인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지율스님의 단식이 어느새 50일을 넘어섰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지율스님의 간절한 목소리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너나할 것 없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정부와 고속철도건설공단 등 책임 있는 당국자들께서는 한 수행자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오가는 이 위급한 상황에 대해 결과적으로 방치하고 있음을 깊이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수행과 전법에 전념해야 할 출가자가 50일이 넘도록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지율스님의 요구사항은 도롱뇽 소송의 항소심 공판 선고 시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보완할 수 있는 조사 기간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애초 경부고속철도 현 노선 백지화를 주장했던 지난 시기에 비해 대폭 양보한 수정안이며, 후손만대에 물려줄 자연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이는 또한, 분쟁 해결에 있어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법당국에서 권고했던 ‘판결 시까지 공사중단과 단식중단’이라는 취지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요구사항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우리 종단에서는 재판부의 판결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고 지율스님 또한 단식을 중단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논평을 발표하는 한편, 정부와 지율스님 양자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양측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안이 만들어지고 최종합의에 이르는 듯했으나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안타깝게도 끝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종단은 합의가 무산된 1차적인 원인은 경제적 이익에만 눈이 먼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아집과 독선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살려나감으로써 그것이 바로 모든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드러내는 길입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더디어 보일지라도 결국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 되기도 합니다. 국민 모두가 진정으로 바라는 궁극적인 행복은 무엇인지 고속철도건설공단과 정부의 관계자들께서는 뼈저리게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지율스님에게도 종단 제방에서 염려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당부합니다. 목표가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수행자는 방법과 절차를 실현해나감에 있어 반대하는 입장까지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챙겨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요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體多卽一)이라 했습니다. 한 생명의 죽임이 다른 모든 생명의 죽음이 되기도 한다는 스님의 주장이 그대로 스님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뜻이 이미 천하에 알려졌음을 인지하여, 극단적 방법은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율스님의 생명과 건강을 염려하는 국민들의 정서와 생명의 시대, 문화의 시대로 가기 위한 사회적 진통임을 슬기롭게 인식하여 정부와 고속철도시설공단은 조속한 결단을 내려주기를 당부합니다.
다시 한번 이 사안과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이 적극적인 해결노력을 멈추지 말고 원만무사하게 회향되기를 기대합니다.
불기 2548(2004)년 8월 20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대변인(기획실장) 여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