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장수의 비결을 찾지만
장수의 비결 눈앞에 있는 줄 모른다네
나는 아주 간단한 도리 터득해
죽으로 신선이 울고 가게 한다네
-식죽시(食粥詩)-

‘죽 전문집’이 늘고 있다. 아픈 속의 허기를 메우기 위한 ‘대용식’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당당한 ‘한끼 식사’로 식객들의 발을 잡아끄는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도 건강 때문이다. 옛말에서도 ‘오래 된 병은 죽으로 고친다’ ‘나쁜 운을 타고 태어났으면 죽으로 그 운을 고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효험있는 치유음식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죽이다.

불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죽은 단식수행, 면벽참선 등의 용맹정진 뒤에 늘상 따라붙는 불가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사분율>에는 죽을 먹는 5가지 공덕이 언급돼 있으며, 불교사에 획을 그은 고승들의 건강 뒤에도 어김없이 ‘죽’의 공덕이 숨어있었다. 선사들의 건강을 지킨 종류별 죽 이야기를 통해 불교적 웰빙 키워드를 읽어보자.

▽연밥죽= 한번 정진삼매에 들면 돌부처라도 된 듯 자리를 뜰 줄 몰랐던 효봉 스님. ‘절구통 수좌’라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던 스님의 식사는 한 끼 죽이 전부였다. 1년 6개월간 토굴에서 방석 석장만으로 견딘 스님이었지만 연밥을 넣고 지성으로 끓인 ‘연밥죽’ 한 끼 외에는 별다른 공양이 필요치 않았다고 한다.

연밥은 연꽃의 열매로 맛은 쓰지만 고혈압, 불면 등에 치료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껍질을 벗긴 연밥을 현미찹쌀과 함께 솥에 넣고 끓이다가 약한 불로 천천히 달인 후, 간 연밥을 섞고 다시 끓인다. 연밥 속살이 무르고 국물이 걸쭉해지면 불을 끈다.

▽녹두죽= 통도사가 배출한 유명한 고승 경봉 스님. 일제 치하 왜경들에게 모함을 받고 옥살이를 거듭하던 스님이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즐겨먹었던 음식은 바로 ‘녹두죽’이다. <본초비유>에서는 “열을 없애고 독을 풀어주며 설사에 이로운 것이 녹두”라고 밝히고 있다. 땀띠와 여드름, 각종 피부질환에도 좋은 음식으로 꼽히며 무더위와 갈증 극복에도 효과가 입증된 음식이다. 녹두 삶은 윗물만 따라내어 현미 찹쌀과 함께 끓인 후, 쌀알이 푹 퍼지면 녹두앙금을 넣어 다시 끓이면 된다.

▽잣죽= 불교경전의 최고봉인 화엄경을 통달한 당대 최고의 학승 탄허 스님. 선식에 대한 조예 또한 깊은 것으로 전해진 스님은 잣죽을 즐겼다고 한다. 오대산의 많은 수좌 스님들에게 잣은 더할 나위없는 건강식품이었다.

실제로 잣은 기침, 빈혈, 각종 종기의 치유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풍병을 다스리고 위장을 튼튼하게 한다. 고혈압ㆍ어지러증 환자의 증세 완화에도 탁월하다. 충분히 불린 현미찹쌀을 센 불에 팔팔 끓이다가 불을 줄여가며 서서히 달인다. 죽이 거의 다 되면 잣가루를 넣고 조금 더 끓이고, 먹을 때는 소금을 약간 섞는다.

▽ 복령죽= 8년의 세월 동안 장좌불와를 실천한 ‘철수좌’ 성철 스님. 스님은 12시 전에는 반드시 죽식을 했고 콩죽ㆍ토란죽ㆍ송이버섯죽ㆍ호두죽ㆍ밤죽ㆍ땅콩죽ㆍ오미자죽 등 다양한 죽을 깨끗이 비우셨다고 한다.

복령은 소나무를 벌채한 후 3~8년 사이 뿌리 주위에 기생하는 곰팡이로, 몸안의 습기를 제거하고 오장육부의 건강에 두루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를 맑게 하고 다리의 힘을 튼튼하게 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ㆍ수험생 건강에 특히 좋다. 복령의 검은 피를 벗겨 가루를 내고 이를 현미찹쌀죽에 넣어 다시 한번 끓인다.

▽팥죽= 금정산 범어사 동산 스님은 새벽 4시 예불이 끝나면 청풍당 선방에서 대중들과 함께 죽을 먹었다고 한다. 본래 절에서는 법화경 강독을 마치고 나면 전통적으로 팥죽을 먹기도 하는데, 동산 스님은 특히 팥죽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팥은 빈혈과 변비, 각기병과 신장병 등에 이로운 음식이다. 팥을 깨끗이 씻어 삶고 팥물을 걸러둔다. 팥물의 앙금이 가라앉으면 웃물만 따라내어 끓이다가 불린 쌀을 넣고 죽을 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