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산동과 충칭 등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보면서 중국응원단들이 한국을 응원하지 않고 이슬람권의 중동의 여러 나라를 편드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광경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세상의 중심의 중국이라는 중화사상으로 일철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변방의 주변국들을 오랑캐로 표현해 왔고, 한민족을 동이(東夷)라 하여 동쪽 오랑캐라 칭하는 오만을 부려왔다.
그러나 중국은 축구에서만큼은 한국을 두려워하는 공한증을 느낀다고 한다. 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큰 나라답지 않은 ‘치사한’ 매너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구나, 우리의 역사인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변방사라느니 혹은 중국사라느니 하며 억지주장하는 우스꽝스런 태도에 중국우월주의 혹은 제국주의적 오만이 느껴져 더욱 그렇다.
몇 년 전 한국의 불교단체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을 때 중국은 우리 정부를 위협해 한국 입국을 막았던 일을 상기하면, 요즈음 고구려사 왜곡 등은 상호존중의 태도가 아니라 독선적이며 일방주의적 태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현대사속의 경이가 있다면 그것은 중국의 오만과 독선에도 불구하고 시종 자비심으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의 겸손과 미소다. 나라를 빼앗긴 원한과 복수심을 극복하고 오히려 중국을 미워하지 않는 자비정신에서 불교의 본질과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세계적 지도자이다.
중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오늘날 테러와 반테러의 반문명적, 반생명적 풍토의 배경에는 종교적 배경이 깔려있음을 볼 때, 중국의 압제에서 보여주는 달라이라마의 미소는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전에는 중국의 편협한 중화사상에 매몰되어 티베트의 문화, 예컨대 조장이나 일처다부의 풍속 등에 대해 오해하고 야만시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풍속이 불교의 윤회사상에 근거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역설적이지만 중국이 아닌 유럽과 미국의 티베트 문화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찬탄에서 유래한 것임을 생각할 때 같은 불교인으로 그 편협했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축구에서 보여주는 중국관중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 우리의 역사인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우리 문화유산이 산재한 지역이 현재 자신들의 통치영역에 있다고 해서 억지를 부리는 중국의 태도를 보면서 티베트를 강점한 중국의 제국주의적 태도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다.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티베트보다는 중국문명에 대해 동질적이고 친근감과 우호의식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여 중국의 비위를 맞추고 장단에 놀아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첨단무기로 무장한 초강대국 미국도 그 일방주의로 인해 더이상 도덕적 정당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세계인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오히려 첨단무기와 자살테러가 없이 오로지 자비심과 비폭력으로 티베트의 독립을 염원하는 달라이 라마의 미소가 인류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시대다.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생명경시와 폭력으로 얼룩진 뉴스를 보면서, 다시 한번 이 땅에 달라이 라마의 방문이 실현되기를 발원한다.
이희재(광주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