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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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세상보기> 친일과 제행무상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 세상사 모든 일이 영원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이 가르침을 우리는 매일 겪고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심하였으며, 올 가을부터는 더욱 격론이 예상되는 현안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과 불교와의 관련이다. 이 문제가 2년 전 처음 불거졌을 때 불교계에서는 일부 신문을 제외하고 거의 침묵,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 개정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법안과 불교와의 관련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삼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만나게 된다. 불교와는 관련이 없다고 여겼지만, 50년전 일제 식민통치하의 불교의 행적이 다시금 우리의 문제로 등장한 것이 제행무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에 국회에 상정될 개정안의 취지는 친일파에 대한 규정이 애매한 친일행위 진상규명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에 열린우리당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는 친일행위를 “문화, 예술, 교육, 학술, 종교 등 사회 각 부문에서 식민통치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로 확대했다. 요컨대 불교계의 친일행위도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스님, 불교신자들은 불교계 친일의 구체적인 내용을 거의 모른다. 이는 기본적으로 불교계의 역사의식의 빈약에서 나온 것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불교의 교리 및 사상만 강조하고 근·현대불교를 황무지로 방치한 결과이다.

일제하 불교는 왜색불교니, 친일불교니, 몇몇 스님들은 친일파였다는 등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에 친일행위가 있었는가, 친일파로 지목될 대상 승려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호국·민족불교 혹은 한용운, 백용성 스님의 항일활동, 3·1 운동 때의 사찰 만세운동, 군자금 전달을 통한 불교의 민족운동 등 불교의 다양한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불교 친일에 대해서는 거북스러울 뿐이다. 친일행위라는 개념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불교계에서도 민족, 불교, 독립운동을 배반한 행위는 있었다.

우선 불교의 ‘친일’의 내용을 대별하면 첫째, 일본불교의 신앙을 수용한 승려들이 있었다. 이들을 흔히 왜색승이라고 지칭한다. 둘째, 불교 근대화를 위하여 일본불교의 도움을 받고, 식민지불교 정책을 무조건 수용한 사례가 있었다. 셋째, 불교계 내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조선총독부에 우호적인 승려가 다수 있었다. 넷째, 일부의 경우이지만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승려가 있었다. 이들은 일제에 부화뇌동하고, 식민지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참했다. 다섯째, 일제 초기에는 항일투쟁에 나섰지만 일제 말기에는 친일노선으로 전환한 경우도 있었다. 이 내용 전체를 친일행위, 친일파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불교계도 친일행위 진상규명법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불교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하여 불교계의 친일과 연관된 역사를 재정비해야 한다. 불교계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좋은 말이 있다.

즉 파사현정의 정신으로 불교계의 친일문제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친일문제를 포함한 근대불교를 총체적으로 불교의 역사로 끌어안으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없으면 파사현정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근·현대불교에 대한 연구와 자료수집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국불교, 민족불교를 칭하지 못할 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광식(부천대 교수)
2004-07-21 오후 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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