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그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런데 빈곤의 거울 속에 언젠가부터 여성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남성배우자가 없거나 있어도 무능력한 여성가구주들, 홀로 사는 여성노인의 얼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빈곤하면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가난한 남성을 떠올리곤 한다.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여성을 피부양자로 생각하는 현실속에서 여성은 빈곤에서 일정부분 비껴나 있었다.
최근들어 계층간의 격차가 커지면서 매스컴 등 사회일각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빈곤과 관련한 공식적인 자료들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현상을 주목하게 했다. 그것은 빈곤층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빈곤층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빈곤의 여성화’라고 하며 세계화이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여성들이 빈곤층으로 편입되고 있는가?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부터 여성은 가사노동과 자녀양육, 약자에 대한 보호등 보살피는 자로 규정되었으며, 여성의 일에 대한 가치는 거의 평가받지 못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경우 가정에서의 보살피는 자의 역할과 유사한 유치원교사, 간호사, 보모, 서비스 및 판매근로자 등 특정직업에 집중되고 있다. 이들 직업은 핑크칼라직업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특정한 기술 없이도 여성이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며 이는 여성의 저임금과도 관련된다.
현재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4% 정도에 머물고 있다. 또한 2002년 8월 현재 여성노동자중 70.7%가 비정규직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는 1997년 IMF 경제위기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들에 대한 우선 해고 또는 비정규직 전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성은 생계부양자이며 여성의 1차적 역할은 가정에 있다’는 해묵은 이분법적 성역할 논리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불리함은 사회복지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일반적으로 사회보험은 아내와 두 자녀를 가진 정규직 남성임금노동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생계부양자인 남성배우자가 없거나,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사회복지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은 현재만이 아닌 미래에도 노령, 실업, 재해 등 사회적 위험에 대해 거의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어 여성빈곤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여성들의 의식변화와 함께 여성운동의 활성화, 여성부 신설, 여성의 정계진출 확대, 그리고 가정폭력, 성폭력방지를 위한 법제정 및 시행 등으로 일견 여성의 권익이 상당히 신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 성과 뒤에는 또 다른 여성의 문제, 즉 여성빈곤이 가려져 있었다. 현재 여성빈곤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됨에 따라 여성의 탈빈곤을 위한 여러가지 대안이 나오고 있다.
부르디외(Bourdieu)는 <세계의 비참>에서 어려운 삶에 처해있는 사람들에 대해 ‘통탄해 해서도 안되고, 비웃어도 안되며 오직 이해하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의 탈빈곤을 위한 대안마련은 우선 엘리트가 아닌 가난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영란/숙명여대 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