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책길에서 ‘우연찮게’ 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듣게 되었다. “제가 우연찮게 그 곳에 가봤는데 아주 좋던데요” “내가 우연찮게 그 일을 맡게 됐어” 내 옆을 스쳐간 두 무리가 모두 ‘우연히’ 이라는 말 대신에 ‘우연찮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요즘 부쩍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같은 한국사람이니 새겨듣지, 만약 외국 사람이 들었다면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이처럼 요즘 우리들의 말글살이는 습관적으로 잘못 쓰는 것들이 많다. ‘너무’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너무’ 는 ‘지나치다’ ‘알맞은 정도를 넘어’ 라는 뜻을 나타낸다. 알맞은 정도를 넘었으니,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가 전제된다. 그러나 이 말은 뜻을 강조하려다보니 표현이 과장되고 잘못 사용되어 그 본뜻과는 사뭇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너무 예쁘다’ ‘너무 사랑해’ ‘너무 기쁘다’ 는 이미 일반화되어버렸다. ‘참’ ‘매우’ 따위로 고쳐서 사용해야 올바른 표현인데 별 생각 없이 마구 쓰고 있는 것이다.
또 지금 인터넷 언어의 문제는, 이미 도를 넘어 올바른 언어습관을 역설하는 것조차 공허하게 들릴 지경이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을 빌리면 결석을 한 학생이 결석사유를 알 수 없는 ‘외계어’(이모티콘을 사용한)로 써서 제출했고, 선생님이 왜 그렇게 썼느냐고 꾸중을 하니까 오히려 그 아이가 더 의아해 하더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우리 어른들이 그저 개탄만 하고있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이렇게 안으로 풀어야 할 당면 과제들이 쌓여있는데 또 한편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우리말글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있다. 서울시가 거듭 발표하고 있는 정책들이 그렇다. ‘영어공용화’니 ‘영어마을’이니 하는 경제논리를 앞세운 근시안적 정책들로 우리 국어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더니, 또 이번엔 하루종일 서울시민의 눈과 발이 될 시내버스에 로마자를 대문짝만 하게 써 붙이고 다니려 한다. 새로운 버스노선과 종류를 확실하게 시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윤데, 엄연한 우리말글을 놔두고 왜 로마자를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하는지 참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특별시의 버스에 우리말글을 제쳐두고 외국 글자인 로마자 도안을 단다는 것은 주권국가 정신에 어긋난다. 또한 우리 스스로 우리말글이 로마자 다음에 놓이는 것을 묵인하는 것이 된다.
언어는 그 민족을 하나로 묶는 중추다. 그 중추 위에 로마자를 세우고 그 새로운 문화적 지배를 자초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문화전쟁 중이다. 요사이 우리말글에 가해지는 안팎의 상황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실 당시 지배계층의 논리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인접해있는 국가들의 무서운 질주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문화적 공략이 우리 깊숙이 침투해 있으니, 그것을 깨닫고 그 폐해를 저지하고 솎아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모두가 지성과 열정을 겸비한 참 한국인으로 거듭 재무장하는 길뿐이다.
강 언덕을 어느새 개망초가 하얗게 덮어버렸다. 오뉴월 우리 산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망초는 원래 우리꽃이 아니라 우리꽃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귀화식물이다. 언젠가 몇 알의 씨앗이 들어왔을 테지만 지금은 왕성한 번식력으로 우리의 온 들을 장악해버렸다. 언젠가 우리의 말글살이가 외래종에 밀려난 토종 식물들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누구도 절대 그렇게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고경희시인, 한글문화연대 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