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차인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동다송>. 하지만 조선후기의 대표적 다승(茶僧)인 초의 선사(1786~1866)가 직접 쓴 <동다송>의 정본은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여러 필사본이 전하는 가운데, 이번에 김대성 씨가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다송자(茶松子)본을 발견해 그 완역본을 내 놓았다.
다송자는 조산 말 금명보정(1861~1930) 스님의 아호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스님은 15세 때 송광사로 출가한 후 평생 수행정진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며 송광사를 떠나지 않았다. 이후 그 이름이 세인들 사이에 잊혀지는 듯 했으나 2001년 송광사에서 ‘다송자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가 열린 뒤, 스님이 난긴 80여 편의 차시(茶詩)에 다인들이 주목하게 됐다. ‘차인’으로서의 스님의 모습이 뒤늦게 재조명된 것이다.
역주자인 김대성(63) 씨는 한국일보와 문화일보 문화부장과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차인연합회 고문이자 (사)한배달 한국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차계의 원로. 김 씨가 <동다송>의 ‘다송자 필사본’을 발견하게 된 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 덕분이다. 1997년 봄 <한국불교전서> 12책에 실린 <동다송>의 모본이 된 다송자 스님의 필사본을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에 수소문을 해 봤지만 책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난 2002년 가을, 김 씨는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이 특별히 보관하고 있던 ‘다송자 필사본’을 발견하고 원문을 촬영해 다른 판본과의 대조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전하고 있는 <동다송> 필사본은 크게 4가지. 태평양화학공업주식회사의 다예관에 소장된 ‘다예관본’은 응송 스님이 소장하던 것이 양도된 것으로,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석오 윤치영 씨의 필사본으로 초의 스님의 친필이 적혀 있어 한때 정본(訂本)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오자와 탈자가 많아 정본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한국다문화연구소 정영선 씨가 소장한 ‘경암본’은 1874년 스님으로 짐작되는 경암이라는 사람이 필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다송사 필사본’인 셈이다. 김 씨는 “다송자 스님은 초의 선사의 제자에게 차를 배웠고, 스님 자신이 차와 시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는 점에서 필사본 중 다송자본이 가장 원전에 충실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님이 남긴 1,106수의 시 중 차를 주제로 한 시가 80여 수나 될 정도입니다. 몇 편의 차시만 남겨도 대단한 차인으로 추앙받는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80여 수의 주옥 같은 차시를 남기고도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다송자 스님은 이제 새로운 근대의 차인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다송자 필사본의 번역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다른 판본들과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비교했다. 원문과 해석을 옮기고 중요 어구나 설명이 필요한 단어는 ‘원문 확대경’에서 자세히 풀었다. <동다송>에 언급된 중국과 한국의 차 현장을 답사한 기록도 실었다.
“우리나라 차 문화사에 우뚝한 <동다송>은 더 깊이 파고들어가 분석되어야 할 텍스트입니다. 초의 스님이 <동다송>을 통해 던지고 싶은 화두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짚은 명저가 나올 때 우리 차 문화는 지금보다 한 차원 높아질 것입니다.”
초의선사의 동다송
김대성 엮음
동아일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