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당시 40대의 나이였던 미국의 탐험가이자 소설가인 저자 피터 매티슨(77)과 동료 동물학자 조지 섈러(71)는 네팔의 포카라에서부터 5주동안 4백㎞를 걸어 ‘돌포’에 이르는 긴 여정을 떠난다. ‘돌포’는 티베트 고원 남서부의 네팔과 접경하고 있는 작은 지역. 중국이 티베트를 강점한 이후 서방세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땅이다. 그곳에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크리스털 사원’이란 뜻의 ‘셰이 곰파’가 자리잡고 있다.
두 사람에게 이 여행의 목적은 신화적 동물이라고 부를 정도로 일반인들이 만나기 힘든 ‘눈표범(snow leopard)'을 찾는 것. 하지만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다. 동물학자인 조지 섈러는 과학적 탐구대상으로, 저자는 정신적 화두로서 ‘눈표범’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얻은 결과는 비슷했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눈표범’을 끝내 두 사람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비로소 ‘눈표범’을 보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난다. 조지 섈러는 “우리의 여정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아 왔어. 보지 않은게 있다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라는 말로, 저자는 “눈표범이 스스로를 드러낸다면 그때 가서야 눈표범을 볼 준비가 돼 있다. 보진 못했지만 눈표범이 존재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집착에서의 해방을 토로한다.
이렇듯 이 책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눈표범을 찾아 떠난 여행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영적 순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내면의 빛을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모든 소유욕을 버리는 것,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행복과 진리는 바로 우리가 사는 여기에 있다는 것 등의 깨달음을 얻는다.
“아무리 큰 산이라도 손바닥으로 가려버릴 수 있듯이 엄청난 빛과 신비로 가득찬 이 세상도 치졸하고 속된 삶 때문에 우리 시야에서 가려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눈 앞의 손을 치우듯 자기 시야에서 그런 삶을 치워 버리는 사람은 내면 세계의 엄청난 빛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내면의 울림또한 여정에서 계속된 성찰의 결과다.
이처럼 영적 순례와 생태 여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이 책에는 저자가 느낀 감상과 체험은 물론 저자의 내면 세계가 진솔하게 드러나 있으며,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등이 가득 담겨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이 여정에서 만난 티베트인의 생활방식을 지극히 예찬한다. 간소함을 행복의 최대비결로 알고, 모든 것을 놓아주며 적게 모으고 단순한 삶을 갈구하는 그들의 생활을 따라 배우겠다고 결심할 정도다.
책은 9월 2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일기문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그 일기속에는 저자가 폭우와 폭설 등 고된 일정을 만날때마다 등장하는 가족과의 달콤했던 기억들이 많이 적혀 있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 준다, 예를 들면 집에 두고 온 막내아들 알렉스에 대한 걱정,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데버러와 추억 등이다. 이와함께 이 책에는 저자가 티베트 승려를 만나 그들에게 들은 구도 역정을 소개돼 놓아 고승들의 향훈도 느낄 수 있다.
꽃잎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발자국까지 확인하고도 눈표범을 놓쳐버린 11월 14일, ‘크리스털 사원’에서 만난 라마승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8년동안 두문불출한 상태였다.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에서 저자는 무엇엔가 얻어맞은 깨달음을 얻는다. 마치 허공속에 울리는 ‘그대는 눈표범을 보았는가?’란 누군가의 질문에 ‘아니,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좋지 않습니까’란 이번 여행의 깨달음말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저자는 예일대학과 프랑스 소르본대학을 나왔으며, 1950년대에 ‘파리리뷰’를 창간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단순한 ‘신자’의 수준을 넘은 해박한 불교 지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또한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미국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2회(1979년 현대사상 부문, 1980년 논픽션 부문)나 수상했다.
신(伸)의 산(山)으로 떠난 여행
피터 매티슨 지음/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