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개심사 대웅보전(보물 제143호)의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협시불인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세 분이 차례로 X레이 촬영기 앞에 섰다.
‘대전ㆍ충남지역의 사찰소장 불교문화재 일제조사’로 7월 26일 개심사(주지 선광)에서 진행된 아미타삼존불 비파괴광학검사 현장. 아미타삼존불의 재료 및 제작기법을 파악하고, 아미타불이 건칠불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계종 총무원 문화유산발굴조사단(단장 성정)의 X레이 조사다.
촬영 작업은 생각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무거운 촬영 장비를 대웅전까지 이동해야 했고, 즉석 현상을 위한 암실도 만들어야 했다. 사람 키보다 큰 불상을 안전하게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사찰에서 X레이 촬영 기회를 두 번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한번에 확실하게 마무리 져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따라서 매 컷 촬영 직후 현상은 필수. 그렇다보니 시간은 더욱 지체됐다.
불상 3위(位)를 X레이 촬영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총 6시간가량. 40여장의 필름이 사용됐다. 작업이 끝난 후 조사단은 현상된 필름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사단이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불상 3위 모두 목불이며 조립제작 됐다 △본존불인 아미타불은 상당히 얇게 조성됐다 △본존불이 협시불에 비해 제작연대가 앞선다.
필름 현상으로 X레이 조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상된 필름을 인화해서 도면화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작업이다. 조사의 학문적 가치는 도면작업에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X레이 조사에서 발견된 유의미한 선과 무의미한 선을 구별해서, 도면에 반영하는 과정 속에서 연구자의 전문적 역량과 안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X레이 조사방법이 우리나라에서 문화재 조사에 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특히 사찰에 모셔진 대형 목불상을 X레이로 촬영 조사한 것은 조계종 문화유산조사발굴단이 처음이다. 이 방법은 지난해부터 조계종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문화재의 과학적 조사의 한 부분이다.
X레이 조사가 절실한 까닭은 우리나라 불상의 다수를 점하는 조선시대 목불상의 제작기법은 X레이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금불사가 잦은 우리나라 불상은 육안이나 촉감으로 재료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X레이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에 대한 관심이 낮아 지금까지 미술사 연구는 양식과 도상(圖象) 중심으로 이뤄져 재질 분석과 제작기법 연구에는 취약함을 보여 왔다.
X레이 조사방법을 적용할 때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는 촬영장비와 기술의 낙후성이다. 전문 업체와 장비가 전무해 건물의 안전성을 진단하는 비파괴검사 전문 업체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날 개심사 법당의 아미타삼존불에 대한 X레이 촬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 문화재 전문 기관이 보유한 X레이 촬영 장비도 크기가 큰 불상 촬영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연구 환경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앞서있다. 이미 1920년 전후로 X레이 촬영을 문화재 연구에 도입했고, 현재 일본 내 주요 불상은 촬영 및 도면 작업을 거의 완료했다. 전문 촬영 장비가 많이 보급돼 자유로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열악한 상황임에도 희망적인 것은 최근 사찰문화재일제조사를 통해 사찰 문화재들이 하나 둘 제 가치를 찾아가고 있고, 과학적 연구조사 방법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남원 선국사와 실상사의 아미타불이 X레이 조사를 통해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속이 완전히 텅 빈 탈활건칠불(脫活乾漆佛)이었음을 밝혀낸 것도 그 성과 중 하나이다.
문화유산조사발굴단의 임석규 책임연구원은 “문화재의 과학적 조사는 걸음마 수준으로 지금은 자료를 축적하는 단계”라며 “과학적 조사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숨어있는 풍부한 사실(史實)을 발견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건칠불이란?
옻칠을 삼베 위에 두껍게 바르고 건조시켜 만든 불상. 건칠불은 삼베와 옻칠로 만들어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고 만든 후에는 가벼워 관리가 용이하다. 중국에서 처음 시작돼 한국과 일본에 전래됐다. 대표적인 건칠불로는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