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숲이 주는 힘에 고무되어 상쾌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곤 한다. 참나무 같이 반듯하고 크고 강인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숲은 나에게 그런 생각마저도 버리라고 한다.”
‘토굴생활은 상근기 아니면 하근기가 한다’는 말이 있다. 즉 출중해서 대중들과 함께 살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나 너무 게으르고 부족해서 단체 생활을 못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얘기다.
토굴생활을 서정적으로 기록한 산문집 <왜 산에 사느냐고 묻거든>(여시아문)를 쓴 현성 스님은 스스로 후자에 속함을 고백한다. 이 책에서 현성 스님은 “천성이 게으르고 부족한 면이 많아서 스스로를 제어할 필요” 때문에 선방 해제 때마다 토굴생활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토굴생활을 하며 나름의 청규(淸規)를 제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란다. 스님이 정한 네 가지 청규는 ‘게으르지 않기 위해 제 시간에 하루 세끼 밥먹기’, ‘낮잠 자지 않기’, ‘TV 보지 않기’, ‘하루 한번씩 참선, 책 읽기, 산책, 나무하기’ 등. 엄격한 선승의 고행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진솔한 여유로운 마음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외롭지만 충만한 시골 생활에서 겪은 잔잔한 에피소드들이 소담스럽게 담겨있다. 하루에 네 번 오는 시골 버스, 산에 올라가서 나무하던 기억, 양철판을 말아서 세웠던 두 개의 굴뚝, 처마 밑 흙속에 집을 짓고 살던 쌍살벌들, 늘 다니던 산책코스 등 모든 추억들이 소박하지만 정겹기만 하다.
특히 겨울 안거를 가기 전 만났던 새끼 들고양이는 스님의 유일한 도반이었다. 꼬리는 잘리고 발은 절뚝거리는 아주 작은 새끼였는데, 항상 스님이 불을 때고 난 부뚜막에서 살았다. 새끼 고양이에 대한 스님의 사랑은 마치 중생을 사랑하는 부처님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겨울 안거를 마치고 돌아오니 녀석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겨울에 얼어죽지는 않았지만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현성 스님은 밖에서는 이리저리 시류에 흔들리고 주관을 잃고 살았지만 토굴에서 혼자 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도 했다. “토굴에서는 내게 투자하는 시간이 많았다. 자신을 투명하게 돌아보며 느끼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행복했다.”
스님은 잔잔한 에세이 곳곳에 선승으로서의 자기 점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신을 되돌아 보는 성찰이 없다면 수행은 딜레마에 빠질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래서 스님은 글 곳곳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스님은 이 책을 쓰고는 다시 걸망을 짊어졌다. 그리고 집과 부엌에 사는 고양이와 마루 밑의 쥐들, 뒤뜰에 사는 대나무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삶은 떠남의 연속이다. 떠나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는 말을 남기고….
현성 스님은 1996년 탄성 스님을 은사로 괴산 공림사로 출가했다. 98년 계간 <포스튼 모던>에 소설 ‘미인암(美人巖)’으로 등단했으며, 2001년 중앙승가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송광사 운문암 등에서 참선 정진하는 한편, 해제 때는 깊은 산골의 토굴에서 정진하곤 했다. 현재 강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위의 절에서 정진하고 있다.
왜 산에 사느냐고 묻거든
현성 지음
여시아문
9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