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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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8만4천문양 개발한 단청장 김윤오 거사
오방색ㆍ기하무늬의 절묘한 조화
사진=고영배 기자
“단청은 고(苦)에서 벗어나 참 나를 찾는 몸부림입니다. 8만개의 문양을 모아 한 채의 건물을 완성하는 단청작업은 곧 수행입니다.”

인류가 내면의 세계를 암시적으로 표현하기위해 다양한 기호와 문자등을 사용한 것에서 연원한 단청(丹靑). 5가지 색과 기하학의 절묘한 조화는 만다라의 세계를 표현한다.

50kg밖에 안되는 깡마른 체구, 앞 이빨 일곱개가 없는 단청장 김윤오 거사(51세). 30년간 올곧게 단청작업에 전념해온 그는 초안도 없이 단청문양을 그려낸다. 붓 가는대로 움직이면서 새로운 단청문양을 만들어내는 김거사는 한여름의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 옆 손곡리 폐교 한 켠에서 8만4천여 창작 단청문양의 창작과 채색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약 12년간 국내의 단청공사 현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었다. 그러던 그가 8만 4천여장의 단청문양을 들고 우리곁에 나타났다.

그는 12년동안 오직 단청문양 창작에만 전념했다고 했다. 그가 그린 단청문양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을 모사한 것이 아니다. 전통문양에 바탕하여 새로 창작한 것들이다. 그의 곁에는 금머리초 3만장, 금문양 5만장, 지장보살, 학, 천수천안, 봉황, 귀면등이 4천여장등 대부분 뚜렷한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단청 문양들이 즐비하다.

그가 12년간 단청문양을 창작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18세 되던 1971년 불국사에서 작업하던 국내 단청계의 거장 故 한석성(韓奭成) 선생 문하에 들어갔다. 그를 본 스승은 “맨손으로는 용을 잡을 수가 없으며, 선 자리에서 성불(成佛)할 수 없다. 끊임없는 자기수행을 통해서만 ‘도’를 얻을 수 있다”는 화두(話頭)를 준 뒤 8년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알아서 화공들의 심부름을 하며, 어깨너머로 단청을 배우는 고된 생활 끝에 1979년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을 획득했다.

이후 사찰을 떠나 화승의 길을 접고 단청기술자로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도 했다. 기술을 인정받은 김는 20년간 월정사 송광사 불국사 마곡사를 비롯 천마총 무녕왕릉, 김유신 사당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일에 어려움이 없고, 가정은 행복했지만 1991년부터 허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에게 다가온 의문은 ‘왜 한국불교 1700여년에 200~300여가지 문양으로 한정돼 있는가. 더 개발할 수는 없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이 화두는 끊을 수 없는 고행으로 이어졌다. 일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까지 의문은 항상 붙어 다녔다.

"시간이 날때마다 그려 보았지만 막상 문양의 난해함과 색깔배합의 어려움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럴수록 답답함은 가중됐지요."

그는 2년동안 새로운 단청문양 창작을 염원하며, 그야말로 단청문양과 사투를 벌였다.

옛 화승(화승)들이 선과 도를 닦고 경지에 이르기 위해 하나의 화두를 선택했듯이….

그러던 어느날 '나보다 남을 생각하고, 단청문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원(願)을 세운 뒤 자신의 몸뚱이를 버리기로 부처님전에 다짐했다. 그러자 주위의 어려운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단청문양을 생각했다. 그가 본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소망을 담은 단청문양을 만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문양이 자유자재로 그려졌다.

그때부터 10여평 남짓한 지하셋방에 작은 밥상을 놓고 단청문양을 완성해나갔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종이에 기도문을 쓰고, 기도하면서 문양을 그려나갔다. 곳곳의 어려움은 새로운 단청문양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날은 ‘문양의 세계화’ ‘싸움하는 옆집 부부의 행복’ ‘밤늦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대학합격’등을 기원하는 단청문양으로 등장했다.

두문불출하며,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밥도 하루 한끼를 먹는 둥 마는 둥 단청의 세계에 빠져있는 그를 보고 이웃사람들과 지인들까지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흘러버린 12년의 세월. 그에게 남은 것은 45kg의 몸무게와 빠져버린 앞이빨 7개은 그리고 8만4천개의 단청문양.

"옛날 화승들이 그렇게 살았어요.단청의 세계는 기하학적 무늬와 귀한 자연색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곳은 깨끗한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그 세계는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8만 4천여장의 단청문양을 어렵게 완성했지만 그는 요즘 외톨이다. 집에 쌀이 없어, 형제들에게 의탁해야할 정도다. 12년의 공백은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서울 삼성암 주지였던 동원 스님, 한석성 선생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대표적 3대 단청계맥을 이은 그를 따르는 10여명의 문하생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가족들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그는 게의치 않는다.

그는 이것도 수행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 작품이면 그 당시 마음으로 해야하 고, 부처님의 세계는 부처님의 마음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현재 후진들에 의해 문화재청에 무형문화재 등록이 신청된 상태다.

한편 김윤오 거사는 10월 13일부터 19일까지 경인미술관에서 제 1회 창작단청문양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033) 732-0538~9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
2004-07-24 오전 9:36:00
 
한마디
우리의 자랑이요 불교미술의 극치요 움직이는 보물이세요 전통의 진수를 후대에 길이 보전 되도록 문하생을 많이 배출하셔서 살아 숨쉬는 단청의 향기를 맘껏 느낄 수 있음 좋겠습니다.저는 부족함이 많으나 사찰의 건축물을 예사로이 보고 전각의 주련 석조물 불상 탱화 모든게 저의 관심사입니다. 더 많은 수작을 남기셔서 불교미술의 찬란함을 돋 보이게 하심 좋겠습니다.이 기사는 소식이 아닌 중대 선언적 의미를 부여하는 메시지라 하겠습니다.
(2005-06-08 오전 12: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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