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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서울 구기동 청운양로원에 때 아닌 노래자랑대회가 열렸다. 저시력장애인연합회 미영순 회장(56)과 다섯 명의 회원들이‘주최’한 것이다.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불러 제끼는 이월순(79) 할머니의 구성진 가락에 다른 할머니들도 함께 흥얼대며 어깨를 들썩인다. 미 회장도 더불어 능숙한 춤사위로 흥을 돋운다.
매달 둘째 일요일이면 청운양로원을 방문하는 미 회장과 회원들은 7월 둘째 일요일을 맞아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의 역할은 할머니들의 식사를 돕고 함께 놀아드리는 것이다. 이 날의 놀이는 노래자랑. 요구르트가 상품으로 내걸렸다. 결국은 모두에게 돌아갈 상품이지만 초라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미 회장의 정성을 잘 알기에 어느 누구 불평하는 이는 없다.
미 회장은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나빠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없는 2급 장애인이다. 걸을 때는 발끝의 감각에 의지해야 하며, 망막이 약해 강한 빛은 피해야 하고, 때로는 높은 안압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도 이겨내야 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챙기기도 힘들지만 “세상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고 확신하기에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15년째다.
미 회장의 시력이 저하된 것은 경기여고 2학년 때.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던 17세의 소녀는 푸르른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어떤 고통도 미 회장의 향학열만은 꺾을 수 없었다. 미 회장은 27세에 다시 공부를 시작, 한국방송대, 국민대를 거쳐 대만 문화대학에서 한중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기에 이른다.
장애는 미 회장에게 큰 불편을 안겨줬지만,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게 한 계기도 됐다. 순번을 정해 미 회장의 등하교를 도와주고, 노트필기를 도와준 학우들이나 그에게 지원된 장학금 등 모든 것이 미 회장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이처럼 세상이 자신에 베푼 도움들에 대한 보답의 방식으로 미 회장이 택한 것이 봉사활동이다. 미 회장의 봉사활동은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듬해인 1990년부터 시작됐다. 중증 장애인을 위한 말벗 봉사,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 등 능력과 형편에 맞게 꾸준한 봉사활동을 해왔고, 1999년에는 저시력장애인연합회를 구성해 장애인들의 학업과 직업 활동을 도왔다. 그 공을 인정받아 지난 6월 30일에는 보건복지부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김용준) 주최의 ‘희망 2004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에서 국민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게 봉사란 환원입니다. 그 동안 받아온 도움들을 빚으로 남기지 않고 다 갚고 가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할 도리를 다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생명나눔운동으로 사후전신기증까지 약속했으니 이쯤이면 철저한 환원이다.
미 회장이 실명의 위기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와 불교의 힘이 컸다. 어머니는, 사람은 누구나 장점을 갖고 있으며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 장애로 인해 인생까지 망치는 일은 없도록 경계했다. 또 딸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해 좌절의 순간에도 딸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머니는 행동과 말씀으로 저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셨고, 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분입니다. 제게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존재지요.”
우연한 기회에 맺은 불교와의 인연은 실명의 위기에 처한 미 회장이 장애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줬다.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만 도태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는 ‘색으로 나를 보거나 소리로 나를 찾는 이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는 <금강경> 사구게를 되새기며 형상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에 집착하다보면 정신까지도 피폐해지기 쉽습니다. 마음만은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불교가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현실의 고통에 힘겨워 손을 내밀어도 불교계에서는 이를 외면한다는 게 미 회장의 불만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발한 불교가 정작 누구보다도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장애인을 외면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미 회장의 숙원은 저시력장애인을 위한 심리상담, 생활·직업재활, 진료 등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재활센터를 건립하는 것과 장애인 포교를 위한 ‘음성신문’을 만드는 것이다. 두 목표를 달성하고나면 다시 전공분야인 한중관계로 돌아갈 계획이다. 전공분야에서 업적 하나쯤은 남기고픈 바람 때문이다.
자신의 장애를 딛고 남을 돕는 값진 삶을 살아가는 미영순 회장. 비록 눈에 비치는 세상은 흐릿하고, 앞에 놓인 것은 더듬더듬 가야 할 가시밭길뿐이지만 미 회장은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오늘도 힘차게 걸어간다. “어제보다 겨자씨만큼 더 깨친 오늘을 위해….”
*8월부터 저시력인연합회에서는 ‘맞춤형 자원봉사 프로그램’ 교육을 시작합니다. 저시력장애인의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봉사 내용이 상이한 점을 감안하여 시도되는 맞춤형 교육입니다. 공부지도, 자료검색 등 필요한 봉사활동은 다양합니다. 불자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를 바랍니다. (02)777-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