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책의 표지를 살펴보자. 20세기 대표적인 과학자인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조선시대 실학자 최한기 그리고 도가사상의 효시인 노자가 함께 앉아 있다.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이들은 왜 한자리에 모여 앉았을까?
이들을 불러 모은 사람은 <아주 특별한 만찬>의 지은이 김숙경 씨다. 함께 ‘놀이마당’을 펼쳐보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조소(彫塑)를 전공했지만 언제부턴가 조각도 대신 책을 들고 ‘사상적 방랑’을 시작한 지은이는 책에서 이들과 ‘문화놀이’ ‘역사놀이’ ‘과학놀이’ ‘예술놀이’ ‘철학놀이’를 펼치고 있다. “철학과 과학, 역사, 문화, 음악, 시와 소설이 하나로 합쳐지면 무엇이 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이 놀이의 목적은 ‘서양의 해체주의와 불교의 연기사상이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심사상의 폭력성을 해체하고 평등한 관계를 드러내는 해체주의와 절대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불교 연기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과정이다.
철학적 개념을 분석하고 비교하고 있지만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소설과 가상대담을 비롯해 시나리오, 편지글 등 다양한 형식으로 꾸며진 ‘놀이마당’은 책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념을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
표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인 초기불전연구원 각묵 스님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각묵 스님은 지은이와의 대담을 통해 ‘놀이’에 등장하는 철학적 단상들을 어떻게 불교적으로 해석하는지를 보여준다. 스님은 데리다의 “텍스트는 계속해서 다른 텍스트 안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텍스트의 고유성이나 순수성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연기의 법칙’으로 해석하고,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등으로 나눠진 이원론의 대립체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중도(中道)의 원리’로 설명한다.
“해체주의 철학과 현대 물리학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원론의 극복을 불교의 중도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첨단 과학과 철학에 발맞춰 불교가 여전히 현실적인 가치와 의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서양철학사에서 몇 천 년이 흐른 후 내린 이러한 결론을 불교는 이미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체주의’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허무주의’란 비판에 대해서는 불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각묵 스님은 “해체 뒤에 남는 것은 허무가 아닌 실천”이라고 답한다.
“중심의 해체, 즉 본질의 해체는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절대기준의 잣대를 해체함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의미가 있고 다 부처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와 남은 상호연기의 법칙으로 얽혀있으므로 자연히 남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놀이를 마치며 “진정한 자유는 평등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모든 학문은 인간의 문제, 삶의 문제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론과 실천 역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자유는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다는 평등사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만찬
김숙경 지음
아름다운인연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