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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3년만에 귀국한 달라이 라마의 한국인 제자 청전 스님은 티베트의 불교 수행은 발보리심과 자비심이 근간을 이룬다고 말했다. 스님은 화두가 뭐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답할 수 없듯, 보리심을 일깨우는데도 순서가 있으며 그것을 수행하는 데는 12년이 걸릴 정도로 간단치 않다고 답했다.
"티베트에서는 육바라밀, 사무량심(四無量心: 慈悲喜捨)을 바탕으로 한 수행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빨리 깨달아서 부처가 되라는 법문은 많이 하는데 육바라밀, 사무량심을 기본으로 보리심을 일깨워서 중생을 부처님처럼 모시는 수행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청전 스님은 "개인의 삶과 지구촌의 모든 뿌리가 고(苦)이고 무상(無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교학적 앎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육바리밀, 사무량심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와 무상에 대해 바로 알 때 보리심을 발하게 되며 이타행을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청전 스님은 스승의 역할을 강조했다. 스승은 삶의 무상함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법을 설하고 이 세상이 참으로 무상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로써 인내하고 보시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수행으로 나아가도록 제자를 이끌어주는 것이다. 또 수행자는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네 가지의 무량심의 실천을 통해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과 우애의 마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동정하여 제거해 주는 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고 기뻐하는 일,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의 마음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는 일, 이 모든 것은 곧 보살행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
출가 후 한국의 선원에서 10년 동안 수좌로 정진하던 중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안고 인도를 찾았던 청전 스님. 달라이 라마 스님에게서 의문을 해결하는 진솔하고도 분명한 답을 얻은 이후 17년 동안 보시, 지계, 선정의 삼박자를 삶의 축으로 삼아 수행하고 있다. 가진 모든 것을 보시하고 지계(持戒)를 생명으로 삼으며, 선정을 지켜나간다는 것이다. 선방에 앉아 정진하는 것을 최고의 수행으로 삼았던 스님에게 이제 보살행의 실천은 삶이자 곧 수행이 되어 있었다. 스님은 라다크 현지민들에게 한국 불자들의 도움을 받아 의약품, 돋보기 등을 보시하고 있지만 수행의 방편일 뿐이라며 밝히길 꺼려했다.
대자비심과 발보리심의 중요성을 수행을 통해 체득한 청전 스님은 6개월에 걸쳐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티베트본을 완역했다. 이 경전이 한국의 많은 불자들에게 보리심을 일깨우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7월 말경 출판되는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되는 <입보리행론>의 첫 완역본으로 달라이 라마가 한국인을 위한 법회 교본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8세기 산티데바 큰스님이 읊은 천 개의 게송으로 된 이 경에 대해 스님은 "실질적으로 자비행을 실천하면서 깨달음에 들어가도록 이끌어주며 수행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다루고 있는 경"이라며 공부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입보리행론>은 10장으로 나눠 제2장은 보시 바라밀, 제 3~5장은 지계(持戒) 바라밀, 제 6~9장은 각각 인욕(忍辱), 정진(精! 進), 선정(禪定), 지혜 바라밀을 설명하고 있으며 제 1장은 보리심을 찬탄, 제 10장은 여러 부처와 보살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깨달음을 빨리 얻을 수 있다는 수행 속성반이 유행하고 있어 놀랐다"며 "수행에는 절대 속성이 없으며 또 수행법에는 우열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스님은 "수행에는 돈이 들 수 없으며 큰 자비심으로 이웃과 나를 위하는 길이 있을 뿐이며 부처님 가르침대로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부처님을 모델로 부처님의 말씀(경전)을 따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신학대학을 다니다 불교에 귀의하고 다시 인도 다람살라에 자리잡기까지, 삶 전체를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선택을 감행해야 했던 수행의 길이었기에 청전 스님의 구도관은 남달라 보였다. 한국을 떠날 때 75kg였던 몸무게가 55kg로 줄어든데다 너무나 오래돼 도수마저 맞지 않는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스님은 외모마저 남방의 수행자를 닮아 있었다. 스님은 "흔히 남방불교하면 뭔가 신비한 것, 신통력 등을 기대하지만 수행자로서 부드럽고 자애로운 미소를 보여주며 자기를 없애 무아(無我)의 경지에 다다르고 공성(空性)을 깨닫는 것이 수행의 참다운 열매"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