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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전남 해남군 황산농협 2층에 마련된 침뜸 무료봉사장을 찾은 김병석(74) 할아버지를 치료한 사람은 정통침뜸교육원 김남수(90) 원장. 김 원장은 봉사자 43명과 함께 이틀 동안 600여 명의 어르신에게 침뜸 치료를 하고 돌아왔다.
# 침뜸의 맥 잇는다
부친에게 전통 민간의술인 침과 뜸을 배운 김 원장은 1943년 자신의 이름을 딴 ‘남수 침술원’을 개원하고 본격적인 침뜸치료에 나섰다.
“침은 침구 하나만 있으면 되고 뜸은 쑥만 있으면 되는, 가장 서민적인 의술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침뜸은 ‘돈 안 되는’ 일로 취급받아 발달도, 보급도 안 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62년 국민의료법이 의료법으로 바뀌면서 침구사 양성제도가 폐지됐다. 더 이상 ‘합법적인’ 침구사가 배출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침구사는 80명인데 그중 실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합니다. 폐지된 침구사 양성법을 되살리고 전통의술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가 가진 지식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배워서 남주자
지난 60여 년간 전통 침뜸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해 온 김 원장의 좌우명은 ‘배워서 남주자’다. 의술은 어느 누구도 사사로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의료인의 목적은 오직 병을 치료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의술(醫術)은 곧 인술(仁術)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10시까지 활동하며 환자를 보살피는 김 원장은 일주일에 5일을 무료 진료 봉사 활동으로 보낸다. 월요일은 국회, 수요일은 <시민의 신문>에 위치한 봉사실, 금요일은 감사원, 토·일요일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사실에서 환자를 돌본다. 유료 진료는 화요일, 목요일 단 이틀뿐이다.
2000년 개원한 창신봉사실에는 치료를 받으러 온 생활보호대상자와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근로자로 늘 붐빈다. 지금껏 창신봉사실에서 치료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2천여 명, 노인환자는 3만명에 이른다. 국회에 문을 연 봉사실은 처음엔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손놓은 전·현직 의원들을 고치면서 금방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배워서 남 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방에 마련된 봉사실이 어느 정도 자리 잡게 되면 인근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김 원장을 ‘불법의료행위’로 신고하기 일쑤였다. 법원에 불려 다니기도 수차례. 지난 달 부산에서도 똑같은 경우가 발생했는데, 부산검찰청은 김 원장에게 ‘혐의 없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야 마음 놓고 봉사도 하게 됐다”고 말하며 웃는 김 원장의 얼굴에는 기쁨과 함께 씁쓸함이 가득했다.
# ‘붕어빵’이 되라
김 원장은 80세가 되던 94년부터 자신의 침뜸술을 전수하기 위해 정통침뜸교육원과 인터넷 사이트(www,chimtm.net)를 개설했다. 그는 이곳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자’ 대신 ‘붕어빵’이 되라고 말한다. 침뜸을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은 실력과 똑같은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생들에게는 180여 시간의 봉사활동을 이수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한 치의 오차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2천여 명의 교육생 중 자체 시험을 통과해 그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은 360여명에 불과할 정도다.
김 원장은 이 ‘붕어빵’ 제자들과 함께 봉사단체 ‘뜸사랑’을 결성해 매년 6만여 명을 상대로 무료 진료 활동을 펴 오고 있다.
# 남은 생, 침구법 제정위해
김 원장의 유일한 소원은 침구사법이 부활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김 원장이 발품을 팔아 국회의원 45명의 서명으로 제안한 의료법개정안이 폐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아흔 살 노인에게 명예나 돈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평생을 바쳐 이어온 침뜸의 명맥이 올곧게 이어져 나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 손자 손녀들이 전통의술인 침뜸을 배우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친 김 원장은 다시 의료가방을 챙겨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봉사실에서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전통 민간의술인 침뜸의 보급으로 국민 모두가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그날을 위해 남은 생을 다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