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늘날 우리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 석등. 하지만 그 정체는 일본 나라의 카스가 신사(神社)에서 유래된 ‘카스가 도로(春日燈籠)’다.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이 땅에 들어온 이 카스가 석등은 지금도 부지런히 확대 재생산되어 전국의 사찰 앞마당을 장식하고 있다.
# 2. 만원권 지폐 뒷면, 경복궁 경회루 오른쪽에 새겨져 있는 삼층석탑. 실제로는 경복궁 복원공사 후 그림의 위치에서 사라진 이 석탑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경복궁 주차장 옆 잔디화단으로 옮겨진 ‘영전사보제존자사리탑(보물 제358호)’이다. 이 석탑은 강원도 원주 영천사에 있던 것으로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때 야외전시유물의 하나로 수집돼 오늘에 이른다.
# 3. ‘조선화관(朝鮮花管)’이라고 불리던 백합과에 속하는 꽃이 있다. 이 꽃의 학명에는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의 이름인 ‘테라우치(terauchi)’가 들어가 있다. 일본의 저명한 식물분류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이 꽃을 발견하고 자기 조사를 후원해준 데라우치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유적지와 유물,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낸 책 <테라우치 총독, 조선의 꽃이 되다>가 나왔다.
지은이는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대한 조사보고서>라는 책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제자리 찾기’에 앞장서고 있는 이순우(42) 씨. 15년간 증권계에 몸담았던 그는 지난해 직장을 박차고 나와 ‘문화재 사료수집가’이자 ‘아마추어 문화재 연구가’로 변신했다.
본격적인 문화재 사료 수집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이번 책에서 “일제강점기 이후 빚어진 뒤틀린 근대역사의 해묵은 찌꺼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례 31건을 보여준다. 2권의 <…조사보고서>가 문화재의 이동경위를 추적한 것과는 달리 이번 책에는 문화재 외에도 국회의사당에 세워진 해태상과 조선호랑이의 포획기록, 조선 최초의 여자비행사 등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상식의 허를 찌르는 역사 읽기의 재미와 함께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역사의 흔적과 만날 수 있다.
제야의 타종 행사가 식민지시대 경성방송국의 기획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치욕의 삼전도비가 1980년 대통령 지시에 의해 송파구 삼전동 역사공원에 자리 잡게 됐다는 사실 등을 그가 제시하는 사료를 통해 확인하다 보면 그 조사방법과 집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도서관 들락거리는 일에 이골이 났다’는 지은이의 말과 노력이 절절히 느껴진다.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 중에도 애당초 기록의 오류나 근거 없는 풍설의 작용으로 엉뚱한 내용들이 사실인양 유포되고 있는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이 씨는 “이 책을 통해 잘못된 사실은 지금이라도 바로 잡고 그 의미를 찬찬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테라우치 총독 조선의 꽃이 되다
이순우 지음
하늘재
1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