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호를 이유로 북한산 관통도로와 천성산 고속철 관통을 그토록 반대했던 불교계. 그런데 불사에 있어서만큼은 환경문제에 대해 너그럽다. 자연히 불교환경운동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근래 들어서는 ‘불교계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환경에 대한 불교의 ‘이중적 잣대’가 계속될 경우 불교의 신뢰성마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해인사 불사가 논란이 되면서 이제는 친환경적 불사를 위한 기준을 세우고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높다.
해인사 스님들과 불교계 17개 단체는 6월 18일과 21일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해인사가 추진하고 있는 ‘팔만대장경 동판 복원 불사’ ‘동판장경 판고와 신행문화도량 건립’ ‘고불암 및 마장 일대 개발 추진 건’ 등에 대해 환경 파괴와 수행환경 침해, 불교 위신 실추 등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종 불사 추진 시 사찰 내부에서부터 ‘사부대중의 공론’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즉 현재처럼 주지 스님의 뜻에 따라 불사를 추진하기 보다는 입안 단계부터 ‘사찰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사부대중의 공론이 담긴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종단 차원에서도 문화ㆍ환경 전문가가 참여한 가칭 ‘불사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내부 점검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특히 이 기구를 종령 등으로 법제화해야 직접적인 각종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부 시스템 마련뿐만 아니라 불사를 심의하는 국립공원위원회나 문화재위원회 등에 불교계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해, 사회적 논의 이전 일종의 순화 작용을 해야 한다는 외부 노력도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들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일종의 불자환경지침서인 ‘불교환경의제 21’를 기본 텍스트로, 출ㆍ재가 공히 지속적인 환경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중ㆍ장기적 환경마인드 확립의 필요성도 절실하다.
이병인 조계종 환경위원(밀양대 교수)는 “불사를 시작할 때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수립돼야 하고, 불사를 추진하기에 앞서 환경문제가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알 수 있도록 ‘사찰환경기본계획서’를 준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