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前 국무총리의 부친이자 한국 서양철학계의 원로 고형곤씨가 6월 25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
1906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3년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37년 경성제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30년대 최초의 철학 학술모임인 철학담화회의의 주축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50~60년대 한국 사회에서 실존주의 철학 바람을 일으켰으며, 54년에는 한국철학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한국 초기 서양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이후 고인은 ‘우리 자신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으로 불교철학에 매진하고 선사상에 천착해 이 분야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69년에는 해방 이후 한국 현대철학사에서 대표적 저술로 평가받는 <선의 세계>를 출간했으며, 70년 서울대에서 뒤늦게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다음해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후학 양성에도 힘써 연희전문학교(38~44년), 서울대(47~59) 교수를 지냈으며 59~60년에는 전북대 총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62년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해 옥고를 치렀으며 이듬해부터 민정당 소속으로 6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65~66년 통합야당인 민정당 사무총장을 맡는 등 한때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걷기도 했다.
고인은 81-89년 학술원 원로회원을, 이후로는 학술원 종신회원, 동국역경원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94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선의 세계>를 비롯해 <해동조계종의 세계> <하늘과 땅과 인간> <철학개론> <선의 존재적 구명>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 고건 전 총리 외에 석윤(변호사)·혜경·혜련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삼성의료원이며 장례는 2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운수리 가족묘지이다. (02)3410-6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