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좋은 기운이 지하철 참사로 상처받은 대구 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禪)화가인 석주 이종철 화백(59)이 6월 4일 대구시에 초대형 달마도를 기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달마도는 폭이 1.3m로 길이가 무려 260m나 되는 한지에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2173명의 역동적인 달마가 그려져 있다. 2173명의 숫자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난해 대구에서 개최된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년도(2003)에 대회 참가국수(1백70개국)를 더한 것이다.
긴 종이(20m×60cm)에는 2천3개의 달마를 그리고 이보다 짧은 종이(10m×1m)에는 1백70개의 달마를 그렸다. 작업기간만도 6개월이 넘었다. 일단 지난해 6월 열린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기간에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일반인들에게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그래서 전시회가 끝난 뒤 국내 선화 수집가들이 높은 작품료를 제시했다. 하지만 평소 의미있는 일에 그림이 사용되길 발원한 이 화백은 대구시가 최근 유니버시아드대회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증하기로 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던 대구 시민을 위로하고 세계 대학생들의 스포츠 제전인 유니버시아드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대형 달마도를 그렸지요. 이젠 대구 시민이 이 그림의 주인입니다.”
1945년 일본 야마구치(山口)시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한국에 건너온 뒤 대전에 정착한 이 화백은 본디 사진작가였다. 20여년간 카메라를 들고 살다가 1980년대 산사에서 수행한 인연으로 90년초 불국사 월산 스님에게서 ‘자봉’이란 불명을 받고 붓을 잡기 시작했다.
현재는 작품 생활 틈틈이 대구 동화사와 공주 영평사에 다니며 불심을 키우고 있다.‘선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를 맡고 있는 이 화백은 지금까지 무려 40여 차례에 걸쳐 개인전과 시연전을 개최했으며, 7월초 서울에서 ‘도자기에 새긴 달마’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