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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택식물원 이택주 원장
사진=고영배 기자
6월 5일 토요일 오후에 찾은 한택식물원(경기도 용인 소재). 백여 개 웅덩이에 귀엽고 깜찍한 애기수련, 아무리 보아도 수련(睡蓮) 같아 보이지는 않는 개연, 왜개연 등의 수련이 활짝 피어 있다. 뙤약볕을 피해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젊은 부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꽃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 열중인 동호회원들, 지팡이에 의지하여 노구를 쉬고 있는 노인들, 그리고 언덕길에는 휠체어에 탄 지체장애자와 그들의 나들이를 돕는 봉사자들의 행렬…. 꽃과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지만 꽃을 향한 사람들의 표정은 그저 평화롭고 넉넉하다. 세계는 한 송이의 꽃(世界一花)이라 했던가. 한택식물원의 꽃무지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은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일찍이 식물 종자의 가치를 깨닫고 식물 모으기에 뛰어든 지 25년, 그 각고의 세월은 한택식물원이라는 식물의 보고(寶庫)이자 소중한 휴식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 주인공은 야생화를 널리 알린 선구자 이택주(63) 원장.

“식물에 미쳐 살아왔지. 돈도 되지 않는 잡초를 애지중지한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도 많이 받았어.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식물을 구해다 심고 가꿨지. 25년 동안 그렇게 일군 식물원이 자연ㆍ환경ㆍ농림 분야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게 됐으니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

한택식물원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20만평의 규모는 차치하고라도, 식물원 수준의 가늠자인 보유종수가 6천여 종으로 세계 유수 식물원에 손색이 없다. 6천여 종 가운데 우리 자생종은 2천4백여 종인데, 잡초로 간주되는 식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를 망라한 셈이라고. 우리 자생식물은 모두 이 원장이 직접 발로 뛰며 온 산천을 뒤져 구해왔다.

이 원장의 어릴 적 꿈은 목장주인이었다. 그 꿈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로, 다니던 건설 회사를 그만두고 30대 젊은 나이에 귀농을 선택했다. 고향에 산을 장만하고 초지를 만들어 소를 키웠다. 한때 사육 두수가 이백여 두에 이르렀으나 소 값이 하락하면서 큰 손실을 맛보아야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조경용 나무와 자생식물 재배였고, 오늘의 한택식물원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식물원의 비전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간 계기는 영국에서 맞게 된다. 런던의 위슬리가든(Wisley Garden)을 방문했을 때 그가 목격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가족이 식물원에 와서 휴식을 취하며 주말을 즐기는 모습은 그에게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큰 감동을 받은 그는 위슬리가든 못지않은 멋진 식물원을 만들겠노라고 다짐하게 된다.

이후 그는 식물 채종과 재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새로운 식물종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있으면 불원천리 달려갔고, 낯선 식물을 발견하면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왕산에서는 바위틈에 난 둥근 잎의 식물(둥근잎꿩의비름)을 보고 기어 올라갔다가 실족해서 죽을 고비를 맞기도 했다. “시작할 땐 그렇게 힘들 줄 몰랐지.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모은 자생 식물들이라 애착도 더 크지.”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식물은 이미 이택주 원장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만 받던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 이는 아내 이길상행(65) 씨다. 독실한 불자인 이 씨는 이 원장과 시간 나는 대로 윤필암(경북 문경 소재)을 찾는다. 윤필암 스님들의 부지런함에 반한 이 원장 부부는 야생화를 식재해주고 재배 요령도 전수했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키울 수 있는 게 야생화”이기 때문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스님들은 키우기 힘든 야생화도 척척 키워냈다. 야생화가 멋들어지게 피어있는 윤필암은 그 절경과 어우러져 찾는 이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이 원장은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한택식물원을 찾는 이들에게 왜성 패랭이를 나누어준 것. “부처님오신날인데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란다.

요즘 이 원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관람객의 감상 태도이다. 꽃을 상하게 하는 관람객도 문제지만, 꽃을 즐길 준비가 안 된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꽃을 감상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이 원장에게 물었다. “꽃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 먼저”라는 답이 돌아온다. “식물은 종 보존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한 송이 꽃을 피우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화려한 자태를 뽐내기도 하고, 짙은 향기를 내뿜기도 해. 생존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고산지대의 꽃들은 자기 몸집에 비해 아주 큰 꽃을 맺어서 곤충을 유인하지. 이 얼마나 큰 산고(産苦) 끝에 피어나는 것이냐 말이야.” 이 말을 듣고 깊섶의 풀꽃을 보니 확실히 달리 보인다.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어머니 마음이 담겨 있으니 풀꽃인들 어찌 아름답지 않으며,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이 원장은 이제 교육시설(gardening school)을 계획하고 있다. 교육시설까지 갖추어야 명실상부한 ‘식물원’이 된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그의 바람은 우리나라가 한택식물원을 밑거름 삼아 식물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이 땅에 위슬리가든 같은 식물원을 만들겠노라던 그의 소망은 이제 식물강국의 꿈으로 여물어가고 있다.
박익순 기자 | ufo@buddhapia.com
2004-06-12 오전 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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