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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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우 교수, 첫 벽암록 강의 10년간 진행
“은산 철벽이니 뉘라서 감히 이를 뚫을 수 있으리오. 몸뚱이가 쇠로 된 소를 무는 모기와 같아 입질을 할 수 없다. 대종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깊고 미묘한 이치를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는가?”

6월 5일 저녁 서울 삼보법회(02-913-2859) 법당에서는 선문제일서(禪門第一書)로 칭송되고 있는 <벽암록> 강의가 열렸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30분 진행되는 이 강의의 첫 번째 시간에 삼보법회 상임법사인 송찬우(54, 동국역경위원) 중앙승가대 교수는 보조지눌 스님의 <벽암록> 서문의 원문을 한자 한자 새기며 해설을 해나갔다.

“원오 스님의 <벽암록> 제창은 스님 자신의 전 인격이 투여되어 있습니다. 특히 말이나 문헌에 대한 집착을 끊어주기 위하여 당시의 구어와 속어를 종횡무진하게 사용하여 수행자들을 일깨워주고 있죠. 원오 스님의 생생하고 발랄한 설법 모습은 뛰어난 기록자들에 의해 그 몸짓마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님 7명 등 40여 수강생의 진지한 열기로 시작된 이날 <벽암록> 강의는 국내에서 원전으로 하는 첫 번째 강의라는 점에서 다소 흥분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벽암록>은 워낙 방대한 양인데다 문사철(文史哲)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선지(禪旨)를 갖춰야만 강의할 수 있는 가장 난해한 선어록으로 정평이 나있기에, 송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번에 송 교수가 10년 이상 진행할 예정인 <벽암록> 강의는 탄허 스님의 제자로서 16세부터 17년간 선교(禪敎)를 함께 닦은 출가 이력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30대 중반부터 경전을 번역한 송 교수는 <전심법요><백장록><동산양개 화상 어록> 등 23권의 선어록을 번역했다.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3분의 2를 번역한 셈이다. 특히 그가 국내 처음으로 번역한 <벽암록>(장경각)은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모시고 일일이 자문을 구해가며 번역한 역저이다. 송 교수를 만나 문자를 통해 불립문자의 도리를 전하고자하는 까닭을 물었다.

-선과 교에 대한 안목을 갖춰야만 <벽암록>을 강의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강의를 개설한 인연은?
“그동안 13년간 삼보법회에서 <육조단경> <달마대사 혈맥론> <이입사행론> <전심법요> 등 선어록을 강의해 왔습니다. 삼보법회의 신축에 이은 삼보선원 개원을 기념해 강좌를 열게 되었습니다. <벽암록>은 조사선의 깊은 뜻과 문학적 표현이 어울어져 한문 원전으로 읽으면 더욱 심오한 맛을 느낄 수 있죠. 제 생애에 다시 한번 이런 강의를 할 기회는 없을 것 같기에 10년이 걸리더라도 <벽암록> 100칙을 끝까지 해설할 계획입니다.“

-문자 해설을 통해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뜻을 전한다는 게 다소 역설적인데요.
“불립문자의 뜻을 잘못 이해하면 대장경도 해석할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불립문자의 진정한 도리는 문자에 있지도 않지만 문자를 떠난 적도 없어요. 오히려 경전은 이 불립문자의 종지를 가르치기 위해 존재합니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보듯이 부처님은 중생들로 하여금 불지견(佛知見)에 개시오입(開示悟入)할 수 있도록 45년간을 교화하셨습니다. 무수한 선어록이 온갖 방대한 지식을 동원해 갖가지 깨달음의 기연을 소개한 것도 문자를 통해 불립문자의 종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죠.“

-<벽암록>을 공부하려면 당연히 실참이 전제되어야 겠군요.
“그래서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삼보선원의 문을 열고 참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간화선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단박깨침입니다. 선어록도 안 보고 실참도 자기 식대로만 하면 평생 헛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조사어록은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실참에서 자신의 수행 여정을 점검할 수 있는 이정표죠. 그래서 저 역시 늘 어록을 읽으면서도 보는 그 마음을 돌이켜 보며 정진하고 있습니다.”

-<벽암록>에 평창을 단 원오 스님과, 그 책을 불태워 버린 대혜 스님의 견해는 다른 것입니까?
“원오 스님이 <벽암록>을 설명한 것도 맞고, 제자인 대혜 스님이 이를 불지른 것도 맞습니다.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붙어있어야 진속불이(眞俗不二)가 됩니다. 원오 스님은 속제(俗諦)의 측면에서 제자를 지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명을 붙였지만, 대혜 스님은 납자들이 언어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은 문자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진제(眞諦)의 측면에서 <벽암록>을 불태운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진속이제를 동시에 드러낸 것입니다.”

-일부 선원에서 선을 지도하는 분들이 어록에 의지하지 않고 법문하거나 납자를 지도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는 데요.
“지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만 의지할 경우 중구난방이 되기 쉽습니다. 지도방식에도 법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고칙(古則) 즉, 조사들이 남긴 언행 중에서 귀감이 되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벽암록>의 공안(公案)을 어떻게 참구해야 할까요.
“공안은 분별이 끊어진 자리에서 본래면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공안을 직관으로 꿰뚫어 봐야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서는 안됩니다. 화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닙니다. 화두를 들고 있는 놈을 자각해야 합니다. 일심(一心)은 시간적인 선후(先後)와 공간적인 피차(彼此)를 떠난 자리에서 확인됩니다. 시공을 떠난 자리를 어찌 점차적으로 닦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일초직입여래지’라고 합니다. 원래 최상승 달마선종에서는 일체가 다 화두입니다. 돌은 왜 단단한가? 대나무는 왜 사철 푸르나 등 삼라만상이 다 대도의 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의심나는 것을 모를 때 선지식을 참방해서 말끝(言下)에 단박 깨치는 것입니다. 이때 깨닫지 못하면 공안으로 남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공안도 형식화되어 선사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형식화된 공안은 학인을 의식에 가둬서 발전이 없게 합니다. 사고는 물 흐르듯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선종이 극성했던 송나라 때 보다 공안이 거의 없던 당 나라 때 오히려 도인들이 많이 나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벽암록이 전하는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삼라만상이 내 마음의 이치를 드러내고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현상의 상대성이 단절되었을 때 마음의 이치가 드러납니다. 이는 스스로 알고 증(證)하는 것이며, 마음이 스스로 이치를 아는 친지(親知)입니다. 중생은 비량(比量, 분별지)으로 보지만, 부처는 현량(現量, 직접지각)으로 봅니다. 내 마음이 실체요 주체임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신심이 필수적입니다. 성품이 스스로 아는 것이니 자각하는 것입니다. <벽암록>은 소리 일어나기 이전의 소리를 스스로 자득하게 합니다. 부처도 전하지 못했는데 가섭이 어찌 전해받았으리오, 이심전심은 스스로 깨달은 것을 인정받은 것일 뿐입니다.”

■<벽암록>은 어떤 책?
<벽암록>은 중국 임제종에서 최고의 지침서(指針書)로 꼽혔던 어록으로 우리 나라 선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책. 설두중현 스님이 <경덕전등록>에서 참선에 도움이 되는 공안 100칙(則)을 뽑아 송(頌)을 달고 여기에 원오극근 스님이 수시(垂示), 단평(短評), 평창(評唱)을 달았던 것이다. 1125년 원오 스님의 제자에 의해서 편집되어 간행되었으나, 그후 제자 대혜종고 스님이 이 책이 선을 형식화하고 흉내만 내는 구두선(口頭禪)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여 간본(刊本)을 회수하여 불태웠다. 그 뒤 장명원(張明遠)이란 사람에 의하여 중간(重刊)되어 오늘날까지 유통되었다.
김재경 기자 | jgkim@buddhapia.com |
2004-06-10 오전 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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