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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구상 시인의 법문
우리 시단의 큰 나무 구상(具常 85) 시인의 타계 소식을 듣고 서가를 뒤져 시집 한권을 찾아 든다. <인류의 盲點에서>란 제목아래 운보(김기창)의 그림이 눈부시다. 찬연한 황금빛 하늘로 해가 두둥실 솟아오르고 있다. 그 옆을 날고 있는 학 한 마리. 마치 노시인이 하늘로 귀환하는 장면인 듯하다. 시집은 임종을 앞둔 한 시대의 지성인이 살아 온 격랑의 세파를 담담히 참회하며 뒷사람들에게 깨끗한 영혼을 가꾸는 길을 안내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

구상 시인은 자신의 시집 표지화로 썼던 이중섭의 그림을 상당한 고가에 팔았지만 돈에 손도 한번 대지 않고 복지시설로 희사했다. 지난해에는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에 거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남에게 신세 안지기’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인은 무엇이든 거절하지 않는 넉넉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지난해 겨울, 큰스님들이 줄이어 떠나더니 시단의 원로도 본래 온 곳으로 돌아갔다. 원로들이 떠나고 없는 세상의 허전함을 메울 ‘그 무엇’은 아직 없는데…우리는 여전히 죽음이 남의 일인 양 제 멋대로 살고 있는데…. 시집의 어느 페이지에 눈길이 멈춘다.

“이제 머지 않아 나는/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저런 추악망측한 나의 참모습과/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임종고백 中)
임연태 기자 | ytlim@buddhapia.com |
2004-05-19 오전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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