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법통이 보조지눌로부터 나옹혜근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지난 5월 23일 전남 무안에서 열린 초의선사탄생문화제 학술세미나에서 허흥식(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한국 선맥에서 대흥사와 초의선사의 위상’이란 논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허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 “고려 말 태고보우와 나옹혜근이 이어가던 한국불교의 선맥은 조선 초 나옹혜근의 문도들에 의해 회암사를 중심으로 이어졌다”며 “이후 보현사의 청허휴정과 대흥사의 편양언기, 초의선사로 법맥이 이어지며 대흥사 고승들이 조선 불교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나옹과 지공의 부도탑비와 청허휴정의 비문은 보현사의 선맥이 지공과 나옹을 거쳐 청허휴정으로 계승되고 있는 뚜렷한 증거”라며 “조선의 법맥을 태고보우를 거쳐 청허휴정으로 연결시키고 있지만, 보현사에서 이를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허 교수는 “대흥사에 서산대사의 의발을 보관하고 표충사에 사액한 것은 대흥사에서 조선시대 선맥을 계승한 뚜렷한 증거”라고 밝혀, 그 동안의 태고보우설과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이에 앞서 허 교수는 <한국중세불교사연구>(1994)에서 태고보우의 법맥을 이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환암혼수가 나옹혜근의 제자라고 주장하며, 나옹혜근설을 뒷받침했다. 허 교수는 “나옹의 문도를 수록한 자료 가운데 ‘안심사 사리석종비음기’나 ‘신륵사 석종비음’ 등에 환암혼수 등 주요 제자들이 기록돼 있다”며 “태고의 비문에 당시 조계종 고승을 승직순으로 망라한 가운데 혼수가 포함돼 있고, 혼수의 비문에는 나옹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태고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종단법령집>의 종헌 전문과 제1조에서는 도의국사를 종조로 보조지눌과 태고보우를 중흥조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 법통에 대한 논란은 한국불교사연구에서 주요 논쟁 주제 가운데 하나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불교 선맥의 중흥조에 대해서는 보조지눌설(說), 태고보우설, 나옹혜근설 등 논쟁이 계속돼 왔다. 보조지눌설은 이재열, 이종익 교수 등이 태고보우설은 성철 스님, 지관 스님, 권상로 교수가 나옹혜근설은 1937년 활해 스님이 주장한 후 박봉석, 허흥식 교수 등이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2002년 10월 한국선학회 학술대회에서 법산 스님(동국대 정각원장)은 조계종 종조를 중국의 육조 혜능으로 봐야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멀게는 서산대사 이후부터 짧게는 1930년대부터 계속된 조계종의 법통설 논란에 대해 이제는 한국불교의 선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조계종 교육원에서 <조계종사>를 발간한데 이어 허 교수가 논문을 다시 발표하면서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김방룡(보조사상연구원 기획실장) 박사는 “조계종도 종단차원에서 종조와 중흥조 등 선맥을 확실히 정리해 조계종의 정체성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