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3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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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총림 선암사 하안거 결제
6월 2일부터 3개월간 용맹정진
태고종 태고총림 선암사는 6월 2일 오전 10시 갑신년 하안거 결제법회를 봉행하고 3개월간의 안거에 들어갔다. 선암사 칠전선원에는 선원장 지허 스님을 비롯한 태고종 납자 30여명이 방부를 들였다.

선암사 칠전선원장 지허 스님은 “원만하고 원만한 한 채의 움막집에 누가 밖에서 보면 집안이 이토록 넉넉한지 알겠는가. 대천세계가 큰 도시로 가득하지만 아직 남은 땅이 있어 좌복을 펴는구나”라는 법어를 내렸다.

결제법어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갑신년 하안거 결제 법문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七殿禪院長) 지허(指墟) 스님

삼십년래심검객(三十年來尋劍客)
기회낙엽기추지(幾廻落葉幾抽枝)
자종일견도화후(自從一見桃花後)
직지여금갱불의(直至如今更不疑)

삼십년 되도록 칼을 찾던 나그네여
몇 번이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았던가
복숭아꽃 한 번 스스로 본 뒤
곧바로 오늘에야 다시 의심치 않게 되었네

이 송(頌)은 당나라 영운 지근(靈雲 志勤) 선사 오도송입니다.
30년 동안이나 칼을 찾았다는 나그네라 했는데 그 칼은 어떤 칼이며 누구 칼인데 언제 잊었길래 낙엽 지는 가을과 새 가지 돋아나는 봄을 무수히 지났던고
이 칼은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써왔던 칼이지만 다 쓰지 못하여 오히려 처음 같은 칼이고 사람마다 본래 지닌 칼인데 어느 때 잊은지 모릅니다. 이 칼은 생사를 해탈케 하는 칼이고, 악을 선으로 바꾸고 허위를 진리로 바꾸고 지옥을 극락세계로 바꾸는 칼입니다. 이 칼을 찾아 쓰면 부처요, 이 칼을 찾지 못하면 육도를 윤회하게 됩니다.

시방세계가 성주괴공하니 내 집이 아니요,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이 생노병사를 벗어나지 못하니 내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도 주인 없으니 나그네입니다. 봄이 오면 복숭아꽃 살구꽃 등 무수한 꽃이 피지만 꽃은 꽃이고 마음은 마음으로 경계를 나누어 부질없이 복숭아꽃을 보았지 언제 한 번이라도 자성의 눈으로 꽃과 내가 둘이 아닌 실체를 스스로 볼 줄 알았던가?

이제야 칼을 찾아 자성의 눈으로 복숭아꽃을 봄으로써 법계를 볼 줄 알게 되니 백척간두에 오른 의심이 복숭아꽃을 보는 순간 진일보하여 대자재로 대자유를 얻어 시방삼세를 마음대로 노닐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6년만에 밝은 별을 보고 깨치셨고, 육조 스님은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다 깨치셨으며 황벽 스님은 마당 쓸다 빗자루에 기왓장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깨치셨다 하지 않습니까?

대오한 역대 조사스님이 특별한 분이 절대로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절대로 도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도인데 우리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돈독하게 정진하고 또 정진하면 꼭 깨치게 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 이 안거 내에 꼭 우리 본래의 칼을 찾아 영운 스님처럼 복숭아꽃을 보도록 합시다. 법계의 일체성품을 보도록 합시다.

영운(靈雲)이 인승문(因僧問)하되 여하시불법대의(如何是佛法大意)닛고 사운(師云)하되 려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로다.
승(僧)이 미유지(未喩旨)하니 재청수시(再請垂示)어늘 사운(師云)하되 채기(彩氣)는 야상동(夜常動)이요 정령(精靈)은 일소달(日少達)이니라.
어떤 스님이 묻되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하니
선사가 말하되 “나귀의 일이 끝나기도 전에 말일이 다가 왔느니라” 하였다.
그 스님이 알아듣지 못하여 다시 설명해 주기를 청하니 선사가 말하되 “채색의 기운은 항상 밤에 움직이지 않고 신령스러운 정기는 낮에 만나지 않느니라.” 하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참선을 지식으로 알려하거나 의리로 따지러 하거나 그것으로 부족하여 그때 그때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위아래를 스스로 정해 놓고 자꾸 올라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남방의 소승 선계통을 추구한다 합니다.

여기 영운스님과 다른 스님의 대화를 가만히 보십시오. 어떤 스님이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다가 아무리 해도 알 수 없어서 영운 큰스님께 찾아가 도대체 불법의 큰 뜻이 뭐냐고 간단하게 가르켜 달라고 묻습니다.

영운 큰스님께서 “나귀의 일이 다가기도 전에 말일이 다가왔다”고 정확히 말씀해 줍니다. 이 스님이 이 정확한 대담을 알아듣지 못하여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큰스님은 친절하고 자비하게 “채색의 기운은 항상 밤에 움직이지 않고, 신령스러운 정기는 낮에 만나지 않느니라” 합니다. 그런데 이 설명이 첫 번째 대답보다 더 어려워 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영운스님께서 이 설명을 더 설명해 달라고 해 봐야 스님께서는 또다시 설명을 설명하시겠지만 우리에겐 산너머 산입니다.

그러므로 참선은 아는 공부가 아니라 깨치는 공부이며 화두를 돈독히 하여 깨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공부입니다.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전라도 남쪽 지방의 말에 ‘고양이 꼬막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꼬막은 조개의 종류입니다. 고양이에게는 조개가 돌맹이와 다름이 없다는 말입니다. 조개가 돌맹이는 아닙니다. 조개는 진주를 만드는 훌륭한 생물입니다. 조개가 돌맹이와 다름없이 보이는 것은 고양이의 무지의 탐욕일 뿐입니다.

단단일개첨두옥(團團一箇尖頭屋)
외면수지리면관(外面誰知裏面寬)
세계대천도저료(世界大千都著了)
상여한지방포단(尙餘閒地放蒲團)

원만하고 원만한 한 채의 움막집에
누가 밖에서 보면 집안이 이토록 넉넉한지 알겠는가.
대천세계가 큰 도시로 가득하지만
아직 남은 땅이 있어 좌복을 펴는구나.
박봉영 기자 | bypark@buddhapia.com |
2004-06-02 오전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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