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국차의 무분별한 수입과 그에 따른 우리 전통차 시장의 왜곡과 붕괴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오는 7월 WTO 농산물 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리 차 시장의 자생력을 높이고 차문화를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살펴본다.
▷소비자가 먼저 변하자
차 시장 개방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소비자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양질의 차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인터넷 차 판매 사이트 ‘중국차 즐기기(www.teancha.com)’ 손성구 대표는 “차 시장 개방은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가 좋은 차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차의 질을 감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지 않으면 질 낮은 차를 비싸게 사게 되거나 도리어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부천 석왕사 전통찻집 다인의 오숙 대표는 “무작정 비싼 차나 남이 좋다고 하는 차를 찾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차를 마셔봄으로써 자신의 몸에 맞는 차를 찾는 것이 올바른 차인의 자세”라고 말한다.
결국 소비자가 똑똑해지면 차 생산자나 유통업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반인들이 체계적인 품다(品茶) 교육을 받거나 차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다. 차 관련 단체에서 진행하는 교육 외에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을 뿐더러,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공급자가 제공하는 일방적인 것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차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차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차인들은 일부 차 수입ㆍ판매상의 기획 이벤트나 마케팅 상술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차에 관한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객관적 자료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고급화ㆍ대중화 두 마리 토끼 잡아야
“우리 차가 경쟁력 갖기 위해서는 비료 농약을 쓰지 않는 고급 수제차를 개발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폭을 넓히고 해외 수출 기회도 만들 수 있습니다.”
경남 하동 효월수제차 이기영 대표는 차 시장 개방 시대에 우리 차가 살길은 ‘고급화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비료나 농약을 사용한 대량생산은 지양하고 본래 우리 녹차가 가진 신선한 맛과 향을 살린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들이 즐겨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미료가 든 음식을 몇 년 씩 먹다보면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싱겁게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농약이나 비료가 첨가된 차를 오래 마시면 본래 차의 맛을 느끼기 힘들어집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고품질의 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배방식과 차 수목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차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마니아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으로 나누어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고급 수제차는 그것대로 발전시키면서 값싸고 품질 좋은 차를 대량 생산 보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녹차 마니아들을 위해서는 녹차뿐 아니라 반발효차, 발효차, 떡차 등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고 품종을 개발함으로써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부담 없이 차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생산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차 음료와 차를 이용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차 시장을 활성화하는 한 방법이다.
▷차 문화 운동 확산계기로
아무리 좋은 차가 생산된다 해도 지금처럼 ‘차는 비싸고 마시기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면 우리 차 시장의 활성화는 요원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차인은 1~2백만 명을 헤아린다고는 하지만 1인당 차 소비량은 50g에 불과하다. 우리 차 시장을 먼저 키워야할 시점인 것이다.
차 시장 개방을 계기로 차 관련 단체들은 ‘우리 차 문화 운동’을 펼침으로써 우리 차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차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은 물론, 생활 속에서 차 마시는 일이 생활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경남 하동의 차 재배농가들은 최근 자체적으로 ‘하동 차’를 알리기 위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각자가 생산한 차를 엄정하게 평가하는 한편, 하동에서 생산되는 차를 홍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화개제다 배희정 기획실장은 “최근 전국 각지에 무료시음장과 다실(茶室)을 마련하는 등 우리 차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질 좋은 차를 생산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한다면 외국차가 몰려온다 해도 우리 녹차는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