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형적인 웰빙열풍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연’과 ‘상생’의 바탕에서 웰빙의 바른 정신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리고 개인적인 웰빙을 넘어서 사회적 웰빙을 추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웰빙의 실천 방안은 어떠해야 할까? 선불교 가르침과 보살의 덕목 등의 불교사상, 발우공양과 다도 등의 불교 문화유산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웰빙족은 60~70년대 미국의 히피, 80년대 여피(YUPㆍyoung, urban, professional), 90년대 보보스족(부르주아, 보헤미안의 합성어)의 상징이다. 이들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매달리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해왔다. 웰빙의 대표적인 문화코드인 요가와 명상은 이들에 의해 크게 유행했고,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친환경적인 실천 개념 역시 생활에 널리 보급됐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한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친환경 공기청정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공기청정기가 필요없는 사회건설에는 무감각한 사람들을 키웠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삶의 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은 증대됐지만, 그 욕망은 개인적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건강과 안위를 ‘사회’의 안녕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방책 마련에 고심해야 할 때다. 상생의 가치실현을 화두삼는 불교 사상에서 그 돌파구를 마련해보자. 특히 선불교는 ‘내 것’이라고 붙잡고 끌어왔던 소유와 집착을 ‘놓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구할 수 있다는 ‘방하착(放下着)’을 가르친다. 분별심을 걷어낸 그 평상의 마음은 곧 도(道)의 실현이다. 이를 통해 ‘참된 쉼(休)’과 ‘마음 건강’의 진정한 의미를 체화할 수 있다.
또한 불법은 모든 것은 인연화합에 의해 형성된 산물이요, 자립적인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기(緣起)’를 설함으로써 상생의 당위를 제시한다. 이로써 ‘나’의 행복이 곧 ‘너’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자리이타의 정신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가치는 곧 보살의 정신과 통한다. 불교식 웰빙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덕목은 바로 ‘육바라밀(보살이 실천하는 6가지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분별을 떠난 반야의 지혜로(지혜ㆍ智慧) 계율을 지키고(지계ㆍ持戒), 인내하고 하심하는 마음으로(인욕ㆍ人慾) 수행에 정진하는 것이 곧 ‘잘 먹고 잘 사는 방도’다. 이는 명상과 수행의 시대에 견지해야 할 수행자의 자세에 대한 좌표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육바라밀 가운데 으뜸의 미덕으로 손꼽히는 ‘보시(布施)’ 바라밀을 생활화함으로써, 물질과 정신을 비롯해 불법까지 두루 나누고자 하는 ‘진정 건강한 마음’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유ㆍ무형의 불교 문화유산 역시 불교적 웰빙 실천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현재 채식열풍을 타고 되살아나고 있는 불가의 음식전통이 그 한 예다. 인공조미료는 물론 오신채까지 걷어낸 사찰음식은 건강은 물론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 경전 <사분율>에서 볼 수 있듯, 부처님께서는 계절에 맞고 때에 맞는 음식을 골고루 양에 맞게 섭취하라고 일렀다. 전체식이라고 하여 모든 식재료를 버리는 것 없이 모두 먹을 것 또한 권했다. 이러한 발우공양의 미덕은 사찰 등지에서 대표적인 불교적 웰빙 문화로 제시되고 있다. 차문화 역시 참선과 다도가 둘이 아니라는 선다일여(禪茶一如)의 정신을 내세워 불교식 웰빙 문화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이 외에도 템플스테이의 인기, 대중법문의 활성화 등 불교를 응용한 웰빙 문화의 호응은 상당하다. 경상북도에서는 불교문화를 핵심으로 하여 5만 여 평에 이르는 대규모 명상문화산업단지 건립을 추진할 정도다. 대안적 웰빙 흐름을 이끌고 있는 불교적 웰빙 바람이 그 본연의 뜻까지 지켜갈 수 있을 때 우리 사회 건강지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전통과 휴식 개념만을 부각한 ‘이미지 전략’에 휘둘리지 않고 불법에 기반한 불교문화를 일상에 무리없이 녹여낼 수 있다면, 불교와 웰빙 정신 모두가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