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철관음, 대홍포…. 굳이 차인이 아니라도 한번 쯤 들어봤을 중국차의 이름이다. 최근 외국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수입되고 있다.
1980년부터 조금씩 일기 시작한 외국차에 대한 관심은 90년대 초부터 본격화됐다. 이때부터 조금씩 홍콩,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보이차와 오룡차가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80년대부터 우라센케 등의 각 다도유파들이 국내 차 단체들과 교류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일본 차 업계는 말차로 대표되는 고가의 차를 우리 차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각종 시연행사와 광고행사 등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중국차 수입이 본격화 된 것은 92년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부터다. 특히 90년대 이후 정부차원에서 실시한 집중적인 차품종 개발과 차산업 진흥 노력으로 우수한 차를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다양한 종류의 차가 국내에 수입됐다.
이후 10여년 동안 국내 차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외국차의 수요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발효차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차시장의 여건상 차인들의 다양해진 기호를 충족시키는데 외국차가 큰 몫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인터넷에는 수십 여 개의 외국차 전문 판매 사이트와 정보 제공 동호회가 개설되어 있고 서울 인사동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외국차 판매점들이 성업 중이다. 이들 대부분이 중국이나 동남아 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인사동 중국차 전문 판매점 백련다다의 이춘화(34) 대표는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차나 대만차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주말에는 일반인들도 중국차와 다구에 대해 배우러 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어느 정도의 외국차가 수입되어 판매되고 있는지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외국차의 수입과 판매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WTO 농산물 시장 개방은 외국차에 대한 열기를 더욱 더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시장 개방은 곧 차에 대한 관세율이 낮아져 외국차가 쉽게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음을 뜻한다. 지금까지 쿼터내 40%, 쿼터초과 500% 이상의 높은 관세율 때문에 수입이 제한되었던 외국의 차가 시장이 개방되는 7월 이후부터는 더욱 많이 수입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연 생산량은 2천 톤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차값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5~10배 정도 비싼 국내 차시장의 현실은 생산량과 질 면에서 외국의 차와 경쟁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현재 질 나쁜 차가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가 외국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좋은 차’를 선별하는 기준은 가격이나 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맹점을 악용해 일부 차 수입상들은 질이 나쁜 차를 ‘40~50년 된 보이차’로 둔갑시켜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차를 마시는 용기인 다구의 수입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다기인 자사호(紫沙壺)는 중국차의 수입 증가에 따라 대량으로 수입되고 있다. 하지만 시중에서 1~2만원선에 판매되고 있는 다구들은 ‘중국 의흥 지방에서 생산되는 자사로 만든 다기’라는 뜻의 자사호가 아니라 ‘색깔과 무늬만 자사호’인 경우가 많다. 이는 전문 매장의 경우라고 해서 100% 안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 차 판매 사이트 ‘중국차 즐기기(www.teancha.com)’ 손성구(42) 대표는 “자사호는 1200도 이상의 불에서 소성하지 않으면 불순물이 완전히 용해되지 않아 차를 마실 때 녹아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인사동 차전문매장 ‘훈’의 양경년(50) 대표는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다구나 차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준 이하의 제품일 경우가 많다”며 “이들 다구는 소성 과정에서 유약이나 중금속이 다량 포함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손 대표는 “차 소비자들이 먼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차 소비자들이 상인들의 기획이나 마케팅, 그들이 제공하는 일방적인 정보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차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소비자들 스스로가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객관적 자료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서대 차학전공 정인오(42) 주임교수는 “값싼 외국차가 밀려들어오는 이 시기를 위기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녹차 대중화 운동과 우리 차문화 개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올바른 차문화의 계승과 전승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적인 지원이나 관련 전문가 양성 등 차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 차문화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수종 개량을 비롯한 차나무 연구에 더 많은 투자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