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인 토인비(1852~ 1883)는 20세기 문명의 가장 놀랄 만한 사건으로 ‘서양이 불교와 만난 것’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의 예견은 현실로 나타나 이제 불교는 동양의 종교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서양이 불교를 만난 효시는 기원전 1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를 침공한 이후 인도 북서부의 왕으로 남게 된 그리스 장군 메난데르(Menander)가 나가세나 스님에게 불교를 배운 기록이 <밀린다왕문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메난데르 이후 거의 잊혀졌던 불교가 서양에 다시 전해진 것은 1800년대 초반.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영광된 일은 불교를 만난 것’이라고 말했던 쇼펜하우어를 비롯해 에머슨, 쏘로우, 막스 뮐러와 리즈데이비드 부부 등에 의해 불교가 소개되면서 서양의 지성인들은 불교라는 새로운 사상을 접했다. 특히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의회가 개최되면서 불교가 정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 최초의 사원이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건립되고 스즈키 등에 의해 선불교가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0세기 중엽, 불교는 잇따른 세계대전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나아가 스나이더, 긴스버그 등 선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은 20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대안사상으로서의 불교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렇게 초석을 마련한 서양불교는 1970~1980년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한국불교가 이와 같은 지구촌의 변화에 맞는 수행법과 불교학을 정립하지 않는 한 세계화는 요원한 일일 뿐더러, 어쩌면 서구에서 해석한 불교를 역수입해야 할 지도 모른다. 지구촌의 불교 붐에 발맞춰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미국을 비롯한 세계 불교의 현황을 알아본다.
불교가 미국에 전래된 정확한 시기를 규정하기란 어렵지만, 1900년 전후 미국에 소개된 이래 미국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성장해 오고 있다. 대략 100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불교는 철학, 문화, 사상, 교육 그리고 예술 등 각 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미국인들이 이분법적인 사고와 과학시대에 병립할 수 없는 기독교적 종교관이 가져다 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대안사상이 불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의 미국불교는 ‘이민불교’와 ‘백인불교’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국가들 보다 미국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현상이다.
이민불교는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 등에 속한 다양한 아시아국가의 불교가 포함되어 있다. 이민불교는 1850년 전후에 아시아 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동양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60년 대에 남방불교의 각 국가에서 이민 온 스님들과 일본 스님들이 주축이 되었고, 1970년대에는 티베트 스님들이 미국에 티베트불교를 소개하면서 각광을 받게되었다. 이들 이민불교의 역할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불교문화를 유지하고 미국사회에 전파하는 한편, 자신의 2세들에게 불교 전통을 물려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반면, 20세기에 접어들어 이러한 이민자 불교의 수준을 넘어 미국인들의 개종이 늘어나면서 백인불교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미국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불교 수행승과 학자들이 배출되고 불교를 미국사회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백인불교는 불교 명상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아시아불교 전통을 흡수하면서 미국적인 불교를 형성해 가고 있다.
현재 백인불교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일본불교와 티베트불교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로서는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을 들 수 있다. 100여 년의 서구불교가 지속적인 발전을 계속해 오고 있지만, 서구사회의 어디에서나 불교가 낯설지 않은 종교가 되는 데 크게 공헌한 요소를 꼽는다면, 헐리우드에서의 불교 영화와 달라이라마, 틱낫한 스님의 명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서구사회의 대중 매체를 통해 물질문명에 찌든미국사회를 불교명상을 통해 치유하려는 강한 열망에 불을 붙인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거나 입문하는 계층은 교육수준이 높은 백인 엘리트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경우 <타임> 지의 발표에 의하면 미국내 불교도는 대략 700만 명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사찰이나 단체에 등록하지 않고 불교를 수행하거나 귀의한 사람은 수천 만 명 이상 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1999년 콜멘(James William Coleman)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불교도의 인종 비율은 백인이 가장 높고, 연령층으로는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이 많으며, 정치적으로는 진보적 성향인 민주당 지지자가 많으며, 교육수준은 대졸과 고졸이 80% 이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따라서 미국 불교도의 성향을 종합해 보면,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며 고학력을 소지한 기독교적 환경에 자라난 유럽계 미국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콜멘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불교를 접하는 동기는 책을 통해서가 38%, 친구 혹은 아는 사람을 통해서가 29%,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가 9%이다.
미국인들이 불교 명상을 수행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함이 12%,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 3%, 정신력 및 집중력 강화를 위함이 12% 등이다.
여기서 명상을 통해 불교에 귀의한 미국인들의 불교관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불교를 형이상학적으로 정교한 종교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보편적인 진리를 생활 속에서 찾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 자신의 고뇌와 인생의 문제를 구체적인 참선이나 명상을 통해 해결하려는 관점에서 불교에 귀의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명상을 매개로 성장하는 불교신행의 붐은 긍적적인 면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구인들이 불교명상에 거는 기대는 즉각적인 효능에 있다. 명상의 즉각적인 효능은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일종의 테크닉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불교명상의 붐이 미국사회를 이끄는 생활 속의 문화로 자리잡지 못한다면 미국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미국불교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불교신행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이들 중 가장 시급한 일은 미국불교 승가의 성립이며 특히 출가승의 배출이다. 한 시대가 창조한 문화를 축적하고 발전, 계승시켜 가는 승가의 형성이 없으면 미국불교는 한 때의 유행에 그치고 말 위험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불교가 이민자불교나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에 의지한 신행형태를 탈피해 미국인들에 의한 백인불교가 형성되어가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불법의 전파는 중생의 고통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구제하려는 열망인 것이다. 따라서 중생에게 다가가기 위한 변화와 변용을 두려워 하지 않고 시대와 지역에 맞는 대기설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는 미국불교에서도 적용되어 미국인들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불교교단이 창출될 수 있도록 아시아 각국의 불교국가들이 힘써 도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미국불교에서 주목해야 할 일은 불교단체들이 ‘미국적 불교’를 창출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는 불교와 미국적 전통과 가치의 융합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으며 다양한 이국적인 불교를 넘어서 ‘미국적 불교’로 융합하려는 시도이다. 예를 들면, 미국불교의회(The American Buddhist Congress)가 그것이다. 1987년에 스리랑카 출신의 하반폴라 라타나사라 스님과 미국인 칼 스프링거에 의해 창립된 이 단체는 미국적 언어와 문화를 불교에 접목하여 다른 전통의 불교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 미국식 불교를 만들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있다.
미국 사회의 곳곳에서 이러한 미국적 불교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일어나 그들이 지향하는 ‘미국적 붓다의 상(American Style Buddha)’과 신행방법, 구제론이 만들어 질 때 진정으로 미국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말할 수 있다.
소운 스님(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