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든 한판의 정치놀이판이 끝났다. 특징적인 것은 이번 총선에서 정치 패러디가 난무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모여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일종의 놀이문화적 심리와도 연관된다. 그러나 작금의 패러디는 대체로 사회나 정치 풍자를 통해 대중들에게 직접적인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패러디란 원래 익살·풍자의 효과를 위하여 표현이나 문체를 자기식으로 확대 해석해서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으로 새롭게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표절과는 일정하게 구별되지만 대중성과 사회현상을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데 공감이 있다.
최근에는 놀이 문화의 한 현상으로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종의 패러디 문화가 나름대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타자와의 교류에 소극적이고 개방에 폐쇄적인 우리나라에서 놀랍게도 세계최고의 휴대전화 보유와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바로 전자매체로 이동해 간 놀이현상이 아닐까.
그 위력은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다. 지난 총선때 수많은 인파를 투표장으로 불러낸 것도, 그래서 온라인을 오프라인과 연결시켜 새로운 문화현상을 창출한 것이 인터넷이고 그 속에서 패러디가 하나의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일부 패러디가 장난끼 넘치는 저급한 내용과 풍자를 담고 있더라도 우리 문화도 이미 자기만족 위주의 엄숙한 난해주의에서 벗어나 대중 속에서 패러디라는 이름으로 활력을 얻고 있다. 어쩌면 문화에서도 결국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문화시대를 살아가는 해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함 없이 일방적인 자신의 해석에 따라 대리만족을 얻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은 염려스럽기도 하다.
요즈음은 문화라는 독립된 단어로 사용되기보다는 다른 말 뒤에 붙여 쓰이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음식문화, 주거문화 등이다. 문화라는 단어에 대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좋든 나쁘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쇠퇴 소멸해 가는 문화를 굳이 보존하고 유지하자고 호소하는 것 또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서구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공연을 그냥 ‘쇼’라고 하는데 별 의미를 달지 않는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씨도 자신의 작품을 그냥 ‘쇼’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쇼’라고 한다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쇼를 부정적으로 보는 바로 그곳에 우리의 문화 즉 예술의 한계가 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문화를 보고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예술적인 무엇에 감동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잘못된 구조가 문화와 예술이 일반 사람들을 점차 멀어지게 만든다. 예술의 기원 중의 하나가 유희다. 어떤 문화현상이든 대중 속에서 융해되어지고 생활의 스트레스를 털어 버리고 새로운 창의를 얻으면 그 자체로 우리사회는 더욱 밝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패러디란 유행병 같은 문화현상이 비록 저급한 문화 배설물의 모양을 띠고 있지만 나름대로 절대다수 대중의 공감과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면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소설이건 영화이건 문화예술은 우리에게 먼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 타인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줄 수 있겠는지. 그런 점에서 패러디 현상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게 해준다.
이강렬(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