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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전쟁을 지지하거나 지원하지 맙시다. 우리가 예전에 너희를 도왔으니 이제 나를 도우라는 미국의 말을 듣지 맙시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침략’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이끄는 대통령. 부시를 비롯해서, 1980년부터 백악관의 주인이 됐던 레이건, 클린턴 등 미 대통령들은 아주 ‘특별한 라이벌’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 바로 앞 라파에트 광장에서 수십년 째 평화 시위를 벌이는 피시노토 콘셉션(60·Piccinotto Conception) 씨다. 콘셉션 씨는 레이건 정부가 소련과의 핵무기 경쟁을 시작한 81년부터 지금까지 24년 동안 핵무기 등 핵무장 해체, 군비 축소 등 전쟁 중지를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연중무휴로 해오고 있다.
스페인 가르시안 출신인 콘셉센 씨는 68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녀는 그후 뉴욕 스페인 영사관, UN, 스페인 영사관 등에서 활동하며 관심 분야를 넓혀갔다. 그러던 그녀가 평화시위를 하게 된 동기는 가정 불화에 따른 끔찍한 소송 때문.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문제보다 정치,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 받는 어린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린 딸을 찾기 위해 스페인 영사관과 미국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딸 올가(Olga) 뿐만 아니라 다른 어린이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콘셉션 씨는 이 때 전쟁과 같은 정치, 사회적 문제 때문에 어른 뿐만 아니라 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당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아이들을 위한 행동(Do it for the Children)’으로써 반전평화운동을 시작했다.
콘셉션 씨는 79년 워싱턴으로 이사, 미 연방위원들을 만나며 군비증강 반대 로비활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이런 활동의 한계점을 느끼게 됐다. 그녀는 보다 효과적인 평화 운동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대통령에게 직접 군축을 요구하기 위해 백악관 앞 평화시위를 시작했다.
“대통령이 백악관 앞 정원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전쟁 반대를 요구하는 제 텐트와 입간판일 것입니다.” 모든 가재도구와 재산을 정리한 후 81년 6월 3일부터 초강대국의 통치권자를 상대로 한 그녀의 ‘전쟁’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됐다.
세계 최대의 강국인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한 개인의 이러한 ‘전쟁’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편리한 미국식 삶에 젖어 있던 몸이 화장실과 목욕시설이 없는 텐트 생활을 하는 것, 의식주조차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 과연 그녀가 얼마동안이나 이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의 눈초리 등.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탄압을 받는 일도 늘어갔습니다.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텐트가 철거당하거나 경찰관에게 시위법 위반으로 체포당하며 두드려 맞은 적도 많습니다. 지난 3월에는 누군가 텐트에 불을 붙여 옷과 팸플릿, 입간판 전부를 잃기도 했죠.” 콘셉션 씨는 늘 경찰 진압에 대비해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헬멧’을 쓰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녀의 관심 분야도 바뀌어 갔다. 미소 간의 핵무기 개발 경쟁 반대는 군사력 억제 및 평화 정착으로,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의 야만성 홍보, 한반도 평화 통일과 이산가족 상봉 등이 주요 과제가 됐다. 최근에는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그녀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주제다.
보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워싱턴에 왔다가 자기를 만나러 온 사람들을 비롯해서 콘셉션 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갔다. 주변 가게 사람들도 콘셉센 씨에게 알게 모르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즈>와 같은 유수의 신문도 그녀의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당신이나 한국 정부도 더 이상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군대를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합니다. 정부나 언론의 일방적인 말만 믿지 말고 세계 사람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류 스스로가 평화를 찾고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안된다는 것이다.
콘셉션 씨는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는 세계경찰을 자부하는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저 사람들 때문에 하얀 건물(백악관)이 ‘미친 집(Mad House)’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석유를 위해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들만의 편한 삶을 위해 에어콘, 자동차 연료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 결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무고한 목숨이 희생됐어요.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언젠가 일본, 한국을 테러 목표에 추가할 것입니다. 평화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몇 년전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과 좋은벗들 대표 유수 스님을 잇달아 만난 적이 있다는 콘셉션 씨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남북한은 한 민족, 한 형제입니다. 가족이 재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을 막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많은 한국 스님과 불자들이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콘셉션 씨. 마지막으로 그녀는 “붓다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라는 것이다”고 강조했다.(http://prop1.org/conchita/)
워싱턴=강유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