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결과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두고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패배하고, 진보 정치를 표방해온 민노당이 마침내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16년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다시 여대야소로, 그것도 양당 체제로 재편된 셈이다. 이는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탄핵으로 야당은 힘의 논리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그 힘을 맡겨준 국민의 생각을 눈치채지 못했다. 즉,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는 물리학의 법칙을 야당은 간과하였다. 그 결과 탄핵의 부작용 앞에 거대 야당은 침몰한 것이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물론 과거 청산이 중요할 수 있지만 인간은 과거를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국민은 오늘을 살아가야 하고 또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탄핵 심판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그것을 오늘의 정치에 실현하고 나아가 미래 정치의 방향으로 삼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탄핵 심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포용의 정치이다. 탄핵은 거대 야당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대통령보고 죽으라는 말이 아닌가? 야당은 대통령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국민은 대통령편이었다. 대통령은 야당을 포용하지 못해 탄핵을 받았고, 야당은 그 대통령을 포용하지 못해 선거에서 심판을 받았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 역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한나라당과 진보주의를 표방한 민노당을 포용하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는 자신들이 ‘탄핵’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의 아름다움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끌어안아 조화로운 전체를 만드는 데 있다.
탄핵 심판의 또 다른 의미는 변화 내지 개혁의 정치이다. 기업과 정치인이 돈을 매개로 검은 커넥션을 형성하여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어지럽게 만들었음이 정치자금 수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은 이에 분노하면서 “이것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편가르기와 싸움만을 일삼으면서 결국 탄핵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국민은 표를 통해 저항하였다. 국민의 열린우리당 선택은 결코 우리당이 다른 정당에 비해 탁월한 그 무엇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감에서 생긴 하나의 반작용이다. 단지 “아직 때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은 우리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이번만은 ‘혹시나’하는 국민의 기대감이 ‘역시나’로 끝나지 않기를 학수고대한다.
이제는 정말 선거가 끝났다. 선거는 정치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났다는 말은 이제 정치 이외의 현안 문제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사실 노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는 너무 긴 시간을 정치에만 매달려왔다. 정치는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다. 아니 정치가 삶의 전부인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교육비 문제,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경제 문제, 부동산 투기, 이라크 파병, 남북 문제 등 너무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정치가는 정치로 먹고 살지 모르지만 국민은 교육, 경제, 사회 등의 피부에 와닿는 어려움으로 신음하고 있다.
감성적인 정치는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외교 등의 문제는 감성만으로 안 된고, 도덕적인 가치관 아래 합리적인 현실 분석과 뚜렷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 생각난다.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생각할 줄 아는 정치를 기대해 본다.
김상득/전북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