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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에 유물 기증 신영수 티벳박물관장
“필요한 곳에 있어야 빛나죠”
사진=박재완 기자
“문화재나 사람이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활용가치가 크지요. 특히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유물들은 창고에 쌓아두고 혼자만 즐기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보면서 연구하고 전시해야 제값을 합니다.”

티베트를 비롯해 중국, 몽골 등에서 20여년간 수집한 고대 유물 2,117점을 4월 1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신영수(49) 티벳박물관장. 중앙 박물관이 생긴 이래 해외 문화재 기증으로는 최대 규모라는 진기록을 낼 만큼 많은 유물을 내놓으면서도 신 관장은 “제 길을 찾아 오히려 더 대접받을 수 있는 큰 박물관으로 가는 것인데 섭섭할 일이 뭐 있겠냐”며 전혀 미련이 없는 기색이다. 필요에 의해서 수집했지만, 그 물건들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그의 무집착적인 수집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기증한 고대유물들은 중국과 미수교 상태였던 1980년대부터 홍콩 등지에서 치밀하게 모아온 것들이다. 특히 이들은 국내에는 별로 없는 중국 고대 상대(商代)부터 한대(漢代)까지의 청동·철기 유물과 도자기, 당송대(唐宋代) 금속공예품과 주요 청동기 유물이 망라돼 있다. 이중 요령식 동검과 오르도스식 동검 등 무기류와 청동도끼·청동끌과 같은 농기구류는 내몽골과 오르도스를 비롯한 중국 북방지역 고대문화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알 수 있는 수집품이라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수집가는 집념보다 근성과 끈기가 있어야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유욕과는 좀 다른 개념이에요. 어딘가에 필요한 물건이 나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즉시 배낭을 꾸립니다. 그 놈을 손에 넣을 때까지 가격이 맞지 않으면 몇 번씩 찾아가 흥정하기도 하지요.”

여행을 좋아하는 신 관장이 물건을 구입하는 경로는 대부분 발품을 파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재래시장이나 ‘소문’을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찾아낸다. 티베트 의상을 구하러 4천미터급 고산지대에 위치한 ‘무스탕 왕국’에 40시간 이상 말을 타고 찾아가기도 했다.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신 관장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탓에 군 입대전 인사동과 황학동, 박물관 등에서 유물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80년대 초반에는 한강 하류에서 채집한 석기를 故 김원룡 박사에게 제보해 조사팀에 합류한 경력도 갖고 있다.

30여년의 경력과 10만여점이 넘는 해외 유물들이 말해 주듯 신 관장의 수집 인생은 험난했다.

우선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궁금했다. 이런 방대한 양의 문화재 수집에는 수월찮은 돈이 들어갔을 테고, 외국에서 문화재를 들여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테 남다른 고충은 없었을까. “돈이요?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하지요. 인테리어 사업을 병행하고 있어 어려움은 있지만 간신히 버텨 나갑니다.” 이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무용담이 이어진다. 실제로 신 관장은 총포박물관 설립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서 문화재급 무기를 반출하다 세관에 적발돼 고스란히 빼앗기기도 했다.

또 네팔의 오지에서는 길을 잃어 며칠동안 헤매기도 했으며, 티베트에서는 고산병에 걸려 죽을 고비도 맞았다. 그래서 유물들만 쳐다보면 자식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잖아요? 수집품들도 다 내자식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든 작든, 가치가 높든 낮든 똑같이 귀하게 다루지요. 한가지 가슴 아픈 점은 아직까지 세상 구경 못한 자식들이 창고에 가득하다는 겁니다. 그 아이들에게 세상 빛을 보여주고 싶어요.”

신 관장의 이런 결심이 티벳박물관이외에도 인사동의 성(性)문화박물관을 탄생시켰다. 또 그는 박물관 컨설턴트로도 활동하며 사립박물관 건립붐에 일조하고 있다. 얼마전에 문을 연 서울 인사동의 ‘아름다운 차(茶) 박물관’과 경기도 파주시의 스키 등산 박물관도 모두 그의 손에 의해서 빛을 본 것들이다. ‘박물관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그는 6월 서울 인사동에 ‘총포 박물관’도 개관시킬 계획이다.

신 관장은 박물관 하나도 만들기 어려운데 왜 계속 수를 늘려나가느냐고 묻자 이렇게 토로한다. “외국처럼 다양한 테마의 박물관들이 많이 생겨야 교육적인 효과도 크고 그 나라의 문화 수준도 높일 수 있습니다.”

신 관장은 그가 만든 박물관들을 스스로 ‘서비스센터’ 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가 만든 박물관에 가면 다양한 이벤트와 기획전이 꾸준히 개최된다. 티벳박물관은 1년에 3차례씩 유물을 번갈아가며 전시하고 있다. 차(茶) 박물관에서는 관람 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진품 찻잔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만든다.

수십차례 방문한 인도에서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는 간디의 영향을 받아서 일까. “꼭 필요한 유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관에 기증하는 것도 수집가의 미덕”이라는 신 관장은 이번 기증에 그치지 않고 현재 소장하고 있는 중국도자기와 국내 민속자료도 공신력 있는 기관에 내놓을 생각이다.

문화포교사 신관수 관장의 말총머리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비록 돈과 물건은 아니지만 ‘문화의 향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보시정신 때문은 아닐런지.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4-04-19 오전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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