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관련 각종 고소·고발 건이 없으면 별로 할 일이 없을 겁니다."
불교계 한 관계자가 조계종 총무원을 담당하는 서울 종로경찰서에 들렀다가 경찰서 한 관계자에게 들었다는 하소연이다.
삼보정재 낭비 뿐 아니라 불교계 위상을 추락시키는 각종 고소·고발 건이 조계종을 괴롭히고 있다. '폭력'으로 뜻을 관철시키려는 행태는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절집' 내부의 문제를 각종 사회법에 제소하는 '습'은 여전히 조계종의 병폐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근만 해도 원융 스님은 '총무원장 당선무효' 소송(1심 계류 중)과 '총무원장 직무집행정지' 소송(2심 계류 중)을, 홍선 스님은 '범어사 주지임명절차이행금지가처분신청'과 '범어사 주지후보자 확인 및 임명 절차 이행' 소송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을 상대로 각각 제기한 상태다.
이와 관련 조계종은 4월 14일 총무원장 이름의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범어사 문중 내 극히 소수의 해종행위자들이 종단의 권위와 안정을 해치는 소송을 제기해 종단 내 종헌질서에 이해가 부족한 법원의 눈과 귀를 막고 종단의 자율적 인사권을 침해하는 일단의 결정을 받아 종단을 훼손하려는 기도를 하고 있다"며 "해종행위자들이 더 이상 종단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일련의 종단 관련 소송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이처럼 종단 내부의 문제를 사회법에 제소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발행한 〈98ㆍ99년도 종단소송판결문 모음집〉에 따르면 당시 '총무원장직무대행직무집행정지가처분', '총무원장직부존재확인' 등 총 18건의 종단 관련 소송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현상은 5~6년이 지난 현재까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총무원 한 관계자는 "종단 뿐 아니라 사찰과 스님을 상대로 사회법에 제기한 소송이 매년 10건 이상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실제로는 2배가 넘은 20건 이상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개혁 이후 역대 종단 집행부들은 종단 내부의 문제를 사회법에 제소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해종행위'로 간주하고 엄중 대처한다는 방침을 세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조계종 기획실장 여연 스님은 "사사로운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 소송 합의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부산물' 때문에 소송이 지속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외에도 집행부 흔들기를 통한 개인 또는 집단의 종단 내 영향력 확대 기도와 소송제기자들에 대한 집행부의 징계 미온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홍선 스님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취하한 정야 스님(부산 선암사 주지)은 "그간의 종무행정이 원리원칙대로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종단 내 사법기관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헌ㆍ종법 등 각종 법적ㆍ제도적 미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삼보정재 낭비는 차치하더라도 조계종 뿐 아니라 불교계 전체 위상이 추락하기 때문이다.
또 종단 대표가 소송에 휘말릴 경우 대정부 교섭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뿐 아니라,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등 '내부출혈'이 심각할 수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박광서 상임대표는 "종단 관련 소송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종단에 대한 애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못 박으며 "무관심의 장막을 걷어내고, 이해관계를 떠나 내부에서 양측을 중재할 수 있는 승가그룹이 형성돼야 한다"고 해결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