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푸른물에♬♬’
가수 김정구의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이 박헌영(1900~1956)을 소재로 했다는 재미있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경석 성균관대 인문학부 교수가 최근 펴낸 <이정 박헌영 일대기>에서 그의 아들 원경 스님(평택 만기사 주지)의 증언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이 책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대부이면서도 훗날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혁명가 박헌영의 생애를 연보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박헌영의 행적과 언행을 시간순서에 따라 상세하게 재구성했으며, 행적에 대해 배경설명과 해설, 논평 등도 덧붙였다. 또 박헌영의 가족과 친구들의 동정, 국제정세의 변동,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의 주요 사건들도 다뤘다. 저자가 94~96년 모스크바 문서보관서에 직접 가서 발굴한 사료들과 딸 박비비안나와 아들 원경 스님의 보관자료들이 적극 반영돼 있어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드러나 있다.
박헌영의 사망일을 1956년 7월로 확정한 것도 한 예다. 전직 북한 고위관리 박길룡이 원경 스님에게 “1956년 연안파와 소련파가 합세하여 김일성에 도전하자 동유럽과 소련을 순방 중이던 김일성이 급거 귀국해 그날 저녁 내무상 방학세에게 박헌영의 처형을 지시했다”고 증언한 데서 밝혀졌다. 또 박헌영이 1928년 11월부터 1931년 말까지 코민테른이 운영하는 모스크바의 국제레닌학교 영어반에 재학했을 때의 일도 자세히 드러났다. 당시 그는 호치민 등 각국에서 온 청년 공산주의자들과 교유하면서 공산 혁명의 이론과 전략을 배웠고 뛰어난 역량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통 인물 연구를 다룬 책은 연구 대상에 대한 지나친 애정으로 연구 대상 인물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 시켜 독자들에게 이해를 강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문제를 비켜가기에 적절한 형식을 갖췄다. 저자는 연구 대상의 사상과 활동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없이 그저 박헌영이 어느 시기에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만을 자료를 통해 제시할 뿐이다.
박헌영은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았던 사람이다. 남쪽에서는 공산주의자로, 북에서는 미제의 간첩으로 처형됐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반기지 않는 미아 신세의 인물이다. 일제하에서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자로서의 길을 걸었고, 광복 후에는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로서 미군정과 대립했다. 1956년 북한에서 미국을 위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처형됐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박헌영은 계속해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특히 조선공산당의 책임자가 미제의 간첩으로 처형됐다는 아이로니컬한 역사적 사실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박헌영의 두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됐다. 첫번째 부인 주세죽이 소련으로 망명하는 도중 192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난 딸 비비안나와 일제를 피해 도망다니던 1941년 ‘아지트 키퍼’였던 정순년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인 원경 스님이 그들이다. 특히 스님은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6·25 전쟁을 전후해 절에 맡겨진 뒤 불가에 귀의하게 된다.
1991년 10월 두 혈육은 모스크바에서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원경 스님은 이날의 만남에 대해 “참 뭐랄까,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해 깊이 상처받은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불쌍하고 가련한 느낌이 가슴에 차 올랐다”고 회고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박헌영이 1953년 북한 당국에 체포됐으며, 56년 7월 평양 근처 산속에서 총살됐다는 얘기, 주세죽은 해방 후에 북으로 귀환하고 싶었으나 끝내 허용받지 못했다는 얘기 등의 슬픈 가족애사가 이어졌다. 이후 두달 뒤 서울에서 이 두 사람은 다시 만났고 이러한 만남은 이번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번에 나온 박헌영 일대기는 오는 6월 간행 예정인 <이정 박헌영 전집>에 포함된 것을 대중용으로 만든 것이다. 93년부터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등의 주도로 편찬 작업이 시작된 <이정 박헌영 전집>은 제1~3권 박헌영 저작집 제4~7권 관련 자료집 제8권 증언과 회고류 등 간접자료 제9권 일대기와 사진자료로 구성돼 있다.
이정 박헌영 일대기
임경석 지음
역사비평사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