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깊은 계단>과 <인도 기행> 등의 작가 강석경(53) 씨가 5년만에 신작 소설을 냈다. 죽음을 앞둔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의 제목은 <미불(米佛)>. ‘쌀 한톨만한 불성을 지녔다’는 뜻의 ‘미불’은 주인공인 화가 이평조가 젊은 시절 불가(佛家)에 몸담았을 때 받았던 법명이다.
미불은 수묵 중심의 기존 동양화를 거부하고 색채와 구도로서 한국화의 독특한 경지를 꽃피워온 화가다. 어느 날 화가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미불은 혜초의 구도행각을 떠올리고 딸과 함께 인도로 향한다. 자신이 ‘그림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는 구도(構圖)를 찾기 위한 구도(求道)의 길에 오른 것이다. 그는 인도에서 성(聖)과 속(俗), 미와 추, 완전과 불완전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는 체험 끝에 자신만의 색채와 구도를 완성하고, 귀국 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식도암 진단을 받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동거녀 진아는 생활고에서 벗어나려는 심사로 그의 그림들에 가압류 소송을 낸다. 주인공이 자신이 토한 피로 그림을 그리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지은이는 과학철학자이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위대한 예술가의 참다운 운명은 ‘일의 운명’이다”라는 말을 선연히 그려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30여 년 가까이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온 지은이는 이 작품에서 ‘어떤 삶의 고난도 진정한 예술혼을 꺾을 수 없다’는 믿음을 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강렬한 근거로서 에로티즘을 추구하는 노화가는 칠순에도 정념을 끊지 못하는 벌거숭이 인간이지만 화폭 앞에선 구도(構圖)로써 제왕처럼 완전을 지향하는 미불은 완전과 불완전, 미와 추, 예술가와 범인의 경지를 모두 보여준다”는 것이 주인공 미불에 대한 지은이의 설명이다.
90년대 초 인도에서 2년여 머물다 귀국한 뒤 10여 년 전부터 경주에서 집필활동을 해오고 있는 지은이는 올 가을쯤 에세이 <경주산책>을 펴낼 예정이다.
미불
강석경 지음
민음사
9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