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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법화경>에 의지해 정진하고 있는 화성 자재정사 주지 묘희 스님이 묘법연화의 세계를 신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경전에서도 연화장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그들에게 그 세계를 직접 볼 수 있도록 하고자 고현(법명 又泉·56) 조선대 디자인학부 교수를 찾았다.
그로부터 4년 4개월이 지난 2004년 3월, <법화경>을 풀어 그린 ‘연해도(蓮海圖)’가 완성됐다. 작품 크기만 해도 높이 2m, 길이 43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연해도다. 정면 불단부분은 16m에 걸쳐 삼존불을 의미하는 보탑과 좌우로 24분의 협시보살, 팔만사천 대중이 자리해 있다. 양쪽 벽면은 각각 13m 크기로 새벽을 여는 금련(金蓮) 위에 <법화경>이 해인사 목판본으로 새겨져 있다.
“불교미술 현대화를 화두삼아 30여 년 매진하다보니 큰 가피를 입었습니다. 어느 작가가 평생 이런 대작을 그리는 인연이 있겠습니까.”
그래픽 봉축카드를 탄생시키고 ‘맑고 향기롭게’ 스티커, 각 사찰 로고, 불교잡지 표지 제작 등 불교이미지 시각화를 선도하고 있는 고현 교수. 고 교수가 세계 최대 ‘연해도’를 제작하게 된 것은 하루 아침에 맺어진 인연이 아니다. 불교와의 첫 만남은 고교 2학년 방학 때 선암사 참당암에서 단청불사를 도우면서였다. 그 뒤, 출가하고 싶었지만 두 번에 걸친 짧은 행자생활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매사가 불교식으로 푸는 삶이 아니면 견딜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조교시절, 본격적으로 불교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장애가 생겼다. 타종교 학생들의 방해였다. 집요하게 연구실로 찾아와 작품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심지어 ‘사탄을 그리는 강사에게 강의를 받을 수 없다’는 데에는 할 말을 잃었다.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불교이미지를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각화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연륜이 쌓이면서 고 교수를 바라보는 불교계의 시선이 생겼다. 젊은 스님들이었다. 고 교수의 그림에서 ‘불교의 현대화’라는 동질성을 느끼며 새로운 불교에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다. 먼저 해인사 강원 스님들이 고 교수를 찾았다. 불교잡지 <해인>지 표지디자인이었다. 당시 불교잡지 디자인을 전문가에게 의뢰한다는 것은 파격이었다. 젊은 스님들이었기에 가능했고, 예상을 깨고 1년간 지속됐다.
1984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당시 서울 법련사 주지 현장 스님이 현대화된 봉축카드를 요청했다. 9장을 그렸고 장당 1만장씩 인쇄했다. 한마디로 ‘대박’을 터트렸다. 전국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불교 이미지가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칼라와 그래픽으로 재현된 것에 모두들 신기해 했다. 카드를 보내기가 아까워 보관하는 팬들까지 생겼다.
“신바람 났습니다. 불교이미지가 일반인들에게 호평 받는다는 것이 의외였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죠. 그때처럼 혼신을 다해 열심히 작업하던 때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고 교수의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복제되어 시중에 나돌았다. 불교계는 물론 책받침, 타월 심지어 앞치마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인용됐다. 창작하는 이에게 복제는 작가로서의 생명을 끊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더 많은 이에게 불교이미지를 보여주는 일이기에 강력하게 막지는 않았다. 문제는 원본과 다르게 왜곡된다는 것. 컬러로 발표된 작품이 흑백으로 변하거나 작은 크기의 그림이 확대되어 원작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고 교수는 사찰 단청과 불화 작업으로 다시 힘을 냈다. 수행, 포교 공간인 사찰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우러나도록 현대화 하는데 노력했다. 천년고찰을 복원할 때는 단청 한 획도 본래모습 그대로 재현해야 하지만, 도심지에 새로 건립되는 사찰이나 포교당은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고 교수의 주장이다. 광주 선덕사, 대전 연화사 불화와 단청이 그의 대표작이라 하겠다.
고 교수가 즐겨 사용하는 색은 세 가지다. 우유빛 흰색과 승복에서 보듯 차분히 가라앉은 쥐색, 그리고 나무와 같은 황토색이다. 황토색을 고급스럽게 표현할 때는 금색을 사용한다. 고 교수가 불화나 단청에 주로 사용하는 색이 바로 화려하지 않은 황토빛 금색이다.
그림의 소재는 주로 <금강경>에서 찾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람, 안개, 물방울, 대숲, 그림자, 다기와 죽비, 풍경 등이 <금강경>을 독송하며 떠올린 이미지이다.
“불교미술도 50년 가량 하면 한 소식 하지 않을까요. 대작 ‘연해도’를 마치고 나니 후련합니다. 이제 경전을 바탕으로 불교미술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고 교수는 불교미술에 있어 독각의 길을 걸어 왔다. 불교미술이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아 매사 혼자서 헤쳐 나가야 했던 것이다. 더 이상 후배들이 허둥대지 않고 똑바로 나갈 수 있도록 이론을 정립하는 일도 그의 몫이 된 것이다.
고 교수에게 ‘불교미술 현대화’가 화두라면 ‘불교조형미술연구소 설립’은 그의 원력이다. 불교를 생활화 하도록 생활용품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이미 1000여종 이상의 작품과 용품을 개발해 놓았지만 보급에 있어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급해 하지 않는다. 불교미술이 이론적으로 정립되면 후배들이 해낼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연해도’를 제작한 고 교수는 자재정사 법당 봉안에 앞서 일반에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공평아트센터에서 ‘현대불교 회화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다른 불교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고 교수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