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인다면 그것은 ‘여성에 의한’ 정치적 혁명이 될 것이다. 대표적 보수정당인 한나라 당에서 여성 당수가 뽑히고 내각 안에서도 여성각료 발언의 영향이 돋보인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어느 정당에서나 여성 정치인의 약진과 활약이 어색하지 않다. 무엇보다 4월 총선에서 40~50여명의 여성이 의회에 진출할 것이란 예상이고 보면 이제 이 땅에서 ‘양성 평등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불교계 현실은 어떤가. 불교대표종단인 조계종의 경우 종단을 구성하고 있는 1만2천여 스님 가운데 비구 비구니스님의 비율은 반반이다. 그럼에도 중앙종회의원 81명 중 비구니스님 몫은 10명.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각 교구본사 주지를 선출하는 산중총회에 비구니 스님은 피선거권이 없다. 선거권조차도 비구니 스님들에겐 일정한 자격요건을 요구한다.
신도단체나 포교단체에도 여성 임원의 수는 극히 적다. 조계종 중앙 신도회 대의원 중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95.5%다. 한국불교계에는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양성평등은 부처님의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다. 그것이 지난 시대 역사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왜곡되고 굳혀진 것이 전통과 관습이란 이름을 붙인 오늘날 불교계의 구태다. 불교가 미래종교를 자임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평등사상 뿌리 때문이다. 그런 교단에서 비구 비구니 스님의 차별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7천여 명에 이르는 한국 비구니 스님 가운데 학문적 성취도나 수행의 깊이를 널리 인정받고 세계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분들도 많다. 올해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여성 불자대회도 이 땅에서 열린다. 한국불교의 세계적 위상 역시 이들의 능력과 활동에 의해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불교 종단들은 이제 부처님 근본가르침으로 돌아가 그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교단 내 양성평등 실현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의식의 구태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차별적 부조리를 근원적으로 없애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김징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