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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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들었다> 불타는 집
“삼계에 편안함 없음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三界無安 猶如火宅)”<법화경 방편품>

이 세상은 참으로 불타는 집과도 같다. 마음들이 이분법적으로 확실하게 갈라져버린 혼란스런 현 시국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소위 국가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국민들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 정파의 세력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자식들이 불에 타 죽을 위기에 놓여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부처님은 미혹의 바다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보고 다음과 같이 법문했다.
‘어느 고을에 큰 부자가 있었다. 대문은 하나밖에 없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만도 수백명이나 됐다. 어느 날 부자가 잠시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집이 불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불이 난 것도 모르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대로 집안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는 놀라서 “얘들아, 빨리 밖으로 뛰어 나와!”라고 고함쳤지만, 아이들은 그 고함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시 소리쳤다. “얘들아, 여기 좋은 장난감이 있다. 어서 나와서 받아라.” 아이들은 장난감이란 말에 뛰어나와 재난을 모면할 수 있었다.’

현상황에서 과연 어떤 ‘장난감’이 필요한가. 종교계가 정치인들의 정략에 휩쓸려 함께 부화뇌동해서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장난감을 줄 수 없다. 진정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장난감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다툼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 주는 정법의 가르침이다. 또 분열되고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잡아 주고, 국민들을 편가르는 정치인들에는 따끔한 질책의 장난감도 주어야 한다.

지금도 뜨거운 번뇌가 세상을 불태우고 있다. 앞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올 긴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가.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
2004-03-31 오후 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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