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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수륙재 보유자 지정된 일초 스님
“민속문화 공연장을 가보면 항상 공연 시작전에 굿을 자주 하지요. 더군다나 굿들의 종류도 다양해 볼거리가 많더군요. 그런데 시작의 의미로 열리는 이 무속의 ‘굿’들이 50여개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불교도 방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무형문화재는 소수에 불과하거든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그래서 불교문화중 무형의 문화로 보존할 수 있는 ‘수륙재’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18일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15호 인천수륙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일초 스님(부평 자원사 주지)은 감회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범패의 작법무가 불교 의식무의 일부를 한 장르로 발췌해 독립시킨 것이라면 인천 수륙재는 종합적인 불교의식 무용입니다.” 일초 스님은 ‘인천 수륙재’가 소리, 악기, 몸짓이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진 ‘불교 의식무의 정수’ 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수륙재는 전문가들로 부터 법음(소리)이 장중하고 환희에 넘친 법무(무용)의 역동성이 가히 의식무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지방에도 수륙재는 얼마든지 행해지고 있지만 특히 인천 수륙재 회심곡의 곡절과 길가름 의식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천만의 색깔이라고 일초 스님은 강조한다. 회심곡은 징과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하며, 길가름은 스님이 바라를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때 다른 지역은 5음을 사용하지만 간성까지 6음을 사용하는 것도 차별성의 예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은 어부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부처님의 법을 강설하고 음식과 가무를 곁들이는 것이 내용입니다.”

인천 수륙재의 발원지는 지금은 사적지로 지정된 강화도 마니산 밑 ‘묘통사’이다. 인천수륙재 보유자는 만월산 약사사의 한능회 스님에서 시작해 운포, 한구하 큰 스님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일초 스님은 1967년부터 1980년까지 법주사 등에서 전통 천도재 의식을 배웠고, 1980년부터 6년 동안은 인천 해광사 등에서 인천 수륙 천도재를 배웠다.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4-04-08 오전 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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